[특별기고] 아프간 비극, 강 건너 불 아니다

 

임종건

미국의 20년 아프간 전쟁이 미군 철군시한인 8월 31일 군인과 대부분 아프간인인 민간인 등 12만3000여 명의 철수를 마무리하면서 일단 끝났다.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9·11테러가 도화선이 되었던 이 전쟁은 미국 역사상 해외에서 치른 최장기간 전쟁이었다.

모든 전쟁의 비극은 군인보다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이 몇 십 배나 큰 것인데, 아프간 전쟁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철수 작전 막바지에 탈레반의 변종 테러조직인 ISIS-K의 자살폭탄 테러로 미군 13명과, 아프간 민간인 170여 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빚어졌다.

앞서 탈출용 미군수송기에 탑승하고자 활주로로 향하는 수송기의 뒤를 쫓는 수천 명의 아프간인들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고, 수송기 바퀴에 매달려 이륙한 사람들이 비행 중 짐짝처럼 떨어져 죽는 형언키 어려운 참혹한 장면도 있었다.

AP통신에 따르면 20년 아프간 전쟁으로 사망한 미군은 ISIS_K 희생자 13명을 포함, 2461명. 반면 아프간 희생자는 민간인 4만7400명, 탈레반 5만1191명, 군경 6만6000명 등 16만 명이 넘는다.

이미 350만 명의 아프간 난민들이 세계 각지로 흩어져 있는 터에 이번에 대부분 미군협력자인 아프간 난민이 추가됐다.

미국은 인도주의 원칙과, 고용자로서의 책무 차원에서도 이들을 탈출시킬 의무가 있다. 그러나 탈레반의 입장에서는 미군 부역자들로 색출해 처단해야 할 대상이고, 동시에 탈출자 중 의사나 엔지니어 등 고급 기능인들은 탈레반 정권에도 필요한 인력이다.

카불공항의 혼돈은 두 입장의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프간 사태는 주한 미군을 두고 있는 한국인에겐 남의 일이 아니다.

주한 미군 철수로 초래될지도 모를 한반도 유사시, 북한의 장사정포나 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있는 한국 내 공항과 항만들의 상황이 연상되었다.

미군철수는 1949년 6월 이 땅에서도 있었고, 반년 뒤인 1950년 1월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 선언이 나와 철군에 대못을 박았다. 그것으로 초래된 것이 1950년 6월 25일의 한국전쟁이었다. 그 3년간의 전쟁은 아프간 전쟁 20년에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아비규환이었다.

남북한의 인명피해만 해도 군인과 민간인이 100만 명 넘게 죽었고, 수천만 명의 피난민이 피로 물든 산하를 헤맸으며, 1천만 명의 이산가족을 남겼다. 여객기 수송이 불가능했던 그 시절, 운이 좋으면 열차나 자동차로, 대부분은 우마차나 걸어서 피난길에 올랐다.

한국전 참전을 위해 한국에 다시 온 미군은 1953년 종전 때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 68년째 이 땅에 주둔하고 있다. 한국전 종전 당시 30만 명 수준이었던 주한 미군은 그동안 줄곧 감축되어 현재는 2만 8000명 수준이다.

안보의 동의어였던 주한미군이 감축될 때마다 이를 막으려는 한국의 대미 로비는 필사적이었다. 미국의 닉슨 행정부와 카터 행정부 때 한국에 대한 철군압박은 최고조에 달했다. 월남전 파병과 핵무기개발 시도 등은 철수압력에 대한 한국 나름의 강온의 대응이었다.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엔 미국은 방위비분담금 문제로 철군압박을 가했다. 10억 달러 수준의 분담금을 50억 달러로 올리지 않으면 철군도 불사한다는 엄포였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후 11억 달러 수준에서 합의해 마무리 됐지만 언제든 이 문제는 재연될 소지가 있다.

주한미군도 아프간에서처럼 아무리 우리가 요구해도 미국이 필요하면 간다고 봐야한다. 미군이 처음 철군했던 1949년 한국은 세계 최빈국으로 버려도 그만인 나라였다. 어쩌면 지금의 아프간보다 더 가난한 나라였을 것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된 지금 한국은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핵심적(Linchpin)인 역할을 한다. 미국이 버리고 싶어도 버리기 힘든 나라가 됐다.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은 한미동맹의 성과물로 미국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한국의 그런 물질적 토대는 대부분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축적된 것이다. 아프간엔 지난 20년 동안 그런 지도자가 없었다. 적이 쳐들어오자 외국으로 도망친 대통령만 있었다.

지금 우리에겐 어떤 지도자가 있나? “스스로 싸울 의지가 없는 곳에서 미군만 죽게 할 수는 없다”는 게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아프간 철군의 변이다. 유사시 우리는 얼마만큼 적과 싸워 나라를 지킬 의지를 갖고 있는가? 주한미군 철수를 걱정하기에 앞서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야 할 질문이다.

<언론인/서울경제신문 사장, 논설실장, 한국일보 외신부장, ‘주간한국’부장 역임 (한국일보 견습29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