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노예해방일에 흑인학살지 가는 이유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속 백인 일색 지지층 모아 대규모 선거유세 예상

지지율 하락 비상속 오히려 인종주의로 백인 지지층 결집 시도 전망

한동안 선거유세를 못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노예해방일에 유세를 재개하기로 하면서 흑인층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고 있다.

유세 장소도 99년 전 흑인 300여명이 학살당해 흑인들에게 상처로 남은 곳이다.

인종차별을 노골적으로 부추겨왔던 트럼프 대통령이 환영받기 어려운 날짜이자 장소인 셈인데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지지율 하락의 비상 속에 인종주의를 동원해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선거유세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하지 못했던 유세를 3개월 만에 재개하는 것이다.

6월 19일은 노예해방일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선언하고 2년여가 지나 1865년 6월 19일 텍사스에 마지막으로 해방의 소식이 전해진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미국의 흑인에겐 노예제의 굴레를 벗고 자유를 품에 안은 뜻깊은 날이자 또 하나의 독립기념일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 장소로 택한 털사는 1921년 백인들이 흑인 동네를 상대로 학살을 저지른 곳이다. 희생자는 제대로 집계되지 않았지만 300명에 이를 수 있다는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백인들이 개인 항공기를 동원해 폭발물까지 투하하며 살인과 약탈을 일삼은 끝에 1만명에 가까운 흑인들이 집도 재산도 잃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인종적 참사라 흑인들에겐 상처가 깊은 이름이다.

야권에선 흑인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이어졌다.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은 11일 트위터에 “이건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윙크하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파티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날짜와 장소가 주는 역사적 의미에 대한 성찰 없이 백인 일색의 지지층을 모아 결집 메시지를 낼 것이라는 데 비판적 입장을 보인 것이다.

하원 흑인의원 그룹을 이끄는 캐런 배스 민주당 의원은 “털사 인종 폭동에 목숨을 잃은 이들에 대한 결례”라면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무고한 흑인 주민에게 만행을 저지른 곳인데 흑인에 적대적이고 억압적 어젠더를 추진해온 대통령이 이 장소를 택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게다가 그는 노예해방일을 택했다. 말도 안되고 흑인을 또 모욕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당 조 케네디 하원의원은 “99년 전 백인 무리가 털사의 흑인 수백명을 학살했다. 내 생애 가장 인종차별적 대통령은 노예해방일에 털사에 가는 메시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CNN방송도 해당 유세에서 인종차별에 관련한 메시지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아주 나쁜 생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 문제에 있어 믿을 만한 메신저가 아니고 인종을 개인적이거나 정치적 이익에 무기로 써왔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미 전역에 확산한 상황에서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며 법질서 확립을 주장해왔다. 지지율 하락을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나오자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연합 장군들의 이름을 딴 육군 기지명 변경에 공개 반대하는 등 인종차별 기조를 통한 백인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3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유세하는 트럼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