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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어넌 음모론] ④”트럼프 반대하면 마귀들?”

백인 기독교 지도자들 노골적 편들기가 음모론 확장에 한몫

한인 교회, 선거불복 시위 참여도…교계 내부서 반성 움직임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부 지역에서 애틀랜타로 이주한 한 한인은 대선에서 누구를 찍을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는 “정직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백악관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바이든 후보를 찍겠다고 했더니 중국 공산당의 하수인을 왜 찍느냐며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대부분이 장로 등 교회 관계자들이었고 심지어 일부 목사도 노골적으로 바이든 후보를 비난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그레이엄 목사/ABC10 뉴스 캡처

 

이러한 분위기는 흔히 복음주의 계열이라고 불리는 백인 기독교인들 사이에 더욱 강력하게 퍼져 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이자 대표적인 복음주의 지도자로 꼽히는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2019년 탄핵 정국 당시 “마귀의 영(demonic power)이 트럼프를 반대하는 배후”라고 말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 기독교계 내부에서도 반성 목소리

이같은 백인 기독교 지도자들의 노골적인 트럼프 편들기가 큐어넌과 같은 음모론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반성이 교계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창간한 미국 대표 크리스천 매거진인 ‘크리스처니티 투데이(CT)’는 2019년 탄핵 당시 사설을 통해 “트럼프는 대통령직에서 제거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레이엄 같은 일부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CT는 “트럼프의 복음주의 지지자들은 보수적인 대법관을 임명하고 경제상황이 좋아졌다는 이유로 불법을 저지른 부도덕한 대통령을 변호하고 있다”면서 “당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트럼프를 계속 의롭다고 ‘칭의’하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라”고 트럼프 지지 교인들에게도 직격탄을 날렸다.

트럼프 탄핵을 주장한 CT 온라인판 캡처

 

물론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이 사설에 대해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매우 실망했을 것”이라고 날선 반응을 보였다. 그는 지난 6일 폭도들의 의회 난입 사태와 관련해서도 “양측이 모두 책밈이 있기 때문에 이를 인식하고 서로를 비난하는 일을 멈추라”는 양비론을 제시해 사실상 큐어넌의 주장을 대변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다른 남부 지역의 복음주의 지도자인 로버트 제프리스 댈러스 침례교회 담임목사는 아예 “안티파나 성난 공화당원이나 모두 경찰을 폭행했다면 죄가 된다”며 의회 난입사건의 주동자가 백인우월주의자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안티파가 개입됐다는 큐어넌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했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의 트윗 캡처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11일자 칼럼을 통해 트럼프의 요청대로 의회의 선거결과 인증을 반대한 조시 홀리 상원의원(미주리, 공화)을 조명했다. 칼럼은 독실한 크리스천인 최연소 상원의원 홀리가 “나는 정의롭다”는 ‘종교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혀 모든 상황을 ‘선과 악’의 대결로 판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홀리를 비롯한 일부 정치인과 교계 지도자들이 합작해낸 ‘종교 국수주의(Religious Nationalism)’가 각종 선거사기 음모론의 배후에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종교 국수주의는 정교분리 원칙을 무시하며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종교 국수주의가 백인 우월주의와 결합한 ‘괴물’이 바로 큐어넌 음모론으로 역사학자 테일러 브랜치의 말대로 “민주주의와 백인세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많은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백인세상을 택할 것이 자명하다.

◇ 한인 기독교인들의 선택은?

지난해 11월 대선 이후 조지아주 의사당 앞에서 벌어진 트럼프 지지자들의 선거불복 시위에 애틀랜타 한 한인교회 교인들이 단체로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대 맨 앞에 서서 ‘선거 도둑질 중단(Stop the steal)’을 외쳤다.

또한 지난 6일 워싱턴 DC에서 열렸던 문제의 집회인 ‘미국 구하기 랠리(Save America Rally)’에도 공직선거 출마자였던 모 한인과 한인 교회 관계자 등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다행히 의회 난입에는 가담하지 않았지만 “워싱턴에 모이라”는 트럼프의 요청에 누구보다 열렬히 반응했다.

선거사기 주장에 동조하며 이를 철석같이 믿는 한인 기독교인 가운데 상당수는 큐어넌 음모론의 명칭 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대신 이들은 보수 성향의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메시지를 주류 언론의 보도보다 더 믿으며, 자신이 원하는 주장과 내용만을 소비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실제 페이스북의 한 미주 한인그룹 이용자들은 선거사기 주장에 동조하지 않으면 아예 그룹에 발을 붙이지 못할 정도로 악성 댓글과 인신공격을 퍼붓고 있다. 또한 페이스북 관리자들이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고 각종 음모론 콘텐츠를 게시해 다른 이용자들이 이에 노출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음모론에 불을 붙이고 있는 주범은 돈벌이를 위해 트럼프 지지 한인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을 재생산하고 있는 일부 유튜버들이다. 말로는 “음모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하면서 극우 SNS ‘팔러’ 등에서 나온 주장을 여과없이 소개한 뒤 “판단은 여러분께 맡긴다”는 식의 방송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사실 이들의 태도는 “주류 언론은 모두 썩었고, 그들의 보도는 딥스테이트를 대변하기 위한 것”이라는 큐어넌의 언론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5편에 계속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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