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위드코로나] ③ 완전히 끝낼 수 없으니 함께 간다

델타변이, 돌파감염에 ‘제로 코로나’ 요원…바이러스와 공존

정부와 국민들의 눈높이 달라…’국민적 합의’ 가장 중요해져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전세계에 수많은 사망자를 내면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던 2020년 봄, 과학자들은 30년간 크게 주목받지 못한 한 작은 연구를 발견했다.

1980년대 영국의 한 병원 의사들은 15명의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일반 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인 ‘229E’ 감염 실험을 했다. 이 바이러스는 어린시절 걸려도 걸린 줄 모르고 많은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흔하고 미약한 바이러스였다. 이 바이러스를 코에 뿌린 결과 10명이 감염됐고 그 중 8명이 실제 감기 증세를 보였다.

다음해 의사들은 한명을 제외하고 똑같은 이들에게 이 바이러스를 코에 뿌리는 실험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6명이 감염됐고, 증상이 발현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의사들은 감기 면역이 빠르게 사라지고 흔하게 재감염됐지만 감염이 경미하고 결국 아무도 증상을 나타내지 않아 이 바이러스와 공존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현재 229E를 포함해 4개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들 사이에서 떠돌며 일반적인 감기를 일으키고 있다. 코로나19가 위세를 떨치던 지난해 봄 과학자들은 이 연구를 보고 결국 코로나19도 감기나 심하면 독감 정도의 증세를 일으키는 다섯 번째 코로나 바이러스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이제 그 희망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 ‘제로 코로나’ 잊어라…’위드 코로나’ 새로운 길

원래 세계가 기대했던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 박멸을 의미하는 ‘제로(0) 코로나’였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코로나19는 스페인 독감을 일으킨 전설의 바이러스처럼 역사의 뒤로 사라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천연두나 소아마비처럼 코로나 19의 박멸을 기다렸던 방역당국과 전세계의 기대는 델타변이의 출현 때문에 산산조각이 났다.

높은 전염성과 돌파감염률 때문에 70~80%의 백신 접종 완료률을 자랑하는 나라들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국경 폐쇄 등 아무리 강력한 조치를 취해도 역부족으로 드러났다. 이에 싱가포르와 영국, 이스라엘 등이 앞장서 근절이 불가능하니 차라리 코로나와의 공존을 택하겠다’는 소위 ‘위드코로나’를 선언했고 미국 등이 이 뒤를 따랐다. 우리 정부 역시 11월에는 위드코로나로 전환한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현재는 아일랜드와 호주, 덴마크, 태국, 일본, 베트남, 남아공, 칠레까지 위드코로나로 방향전환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역시 전파력은 좋아졌지만 치명률은 낮아져 감기나 독감같은 풍토병(엔데믹)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 위드 코로나 ‘선언’만으로는 안돼…정교한 로드맵 필요

하지만 위드코로나는 정부의 선언이나 국민들의 요구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는 난제다. 위드코로나로 전환되면 코로나19에 대한 인식과 방역 체계 등 광범한 변화가 동반되게 된다. 이 변화에 따라 감염 양상도 달라지게 된다. 백신 자체가 ‘걸리더라도 가볍게 지나가게 한다’는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라 원래부터 감염 자체를 완벽하게 막아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위드코로나까지 되면 이 규모는 커질 수 있다.

미국 잡지 애틀랜틱 8월호 기사에 따르면 “초기 임상 결과가 특출하게 보호효과가 높은 것으로 나와 갑자기 이 바이러스의 근절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하지만 이들 백신의 보호 효과가 작용하는 곳은 바이러스의 발판인 코가 아니라 폐다. 그래서 확진자가 획기적으로 줄지는 못한다. 다만 위중증이나 사망이 대폭 감소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처럼 감염은 되지만 증상이 미미하고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황을 바탕으로 위드코로나에서는 확진자 수 억제보다는 치명률을 낮추는 방향으로 방역체계가 전환된다. 오랜 봉쇄에 지친 국민들의 일상과 타격을 입은 경제를 회복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막대한 비용과 의료비 부담 등을 덜어야 하는 필요성도 있다.

◇ 확진자 폭증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나…국민 합의 먼저

위드코로나로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여러 경우의 수를 놓고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단계적 완화지만 긴장감이 느슨해지면서 확진자가 수천명으로 폭증할 가능성이 있고 국민들의 공포감이 커질 수 있다. 또 아무리 백신 접종으로 줄였다고 해도 확진자가 많으면 중증화율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병상도 부족해지고 이들을 치료하느라 정작 다른 중병 환자들이 잘 치료받지 못하는 의료체계에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 위드코로나 시대엔 코로나19에 대해 가졌던 과도한 공포를 누그러뜨리는 심리적 전환도 필요하다. 1년 반 넘게 정부와 과학자들은 코로나19가 ‘독감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되는 무서운 병’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독감 수준의 치명률을 가지게 됐다며 공존하자고 하는 셈이 됐다. 이를 누군가는 받아들이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의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애틀랜틱 지에 따르면 카네기 멜론 대학의 줄리 다운스 심리학자는 “일부 규정을 완화하는 것이 일부에게는 너무 빠르다고, 일부에게는 너무 늦다고 느껴질 수 있다”면서 서로의 위험 감수성 수준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런 맥락에서 코로나19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어디까지 감수할 것인지 국민적 합의가 우선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지난 1일 토론회에서 “현재 정부와 국민이 ‘단계적 일상회복’에 갖는 인식이 크게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들은 일상 회복을 바라지만, 확진자가 많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잣대를 갖고 있다. 내 옆집에 확진자가 나와도 받아들일 만큼 준비가 안 된 셈”이라면서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