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어떻게 샌드위치보다 쌀 수 있나?

[뉴스1 특약=NYT 터닝 포인트 2021] 패션 산업의 그림자

 

뉴스1이 뉴욕타임스(NYT)와 함께 펴내는 ‘뉴욕타임스 터닝 포인트 2021’이 발간됐다. ‘터닝 포인트’는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별 ‘전환점’을 짚어 독자 스스로 미래를 판단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침서다. 올해의 주제는 ‘치유와 변혁의 시대: 공존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이다. 격변하고 있는 전 세계 질서 속에서 어떤 가치가 중심이 될 것인지를 가늠하고 준비하는데 ‘터닝 포인트’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편집자주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은 2조 5000억 달러(약 2762조 5000억 원) 규모의 세계 패션산업을 위기에 빠뜨렸다. 서방에서는 의류 잡화 매장들이 폐쇄되고 인력들이 해고됐으며, 일부 패션 기업들은 파산을 신청하기도 했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의류 노동자들도 생계를 위협받기 시작했다.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1)

2020년 전 세계는 두 가지 기념비적인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코로나19 그 자체와 전염병이 남긴 경제적 재앙이다. 둘 다 금전적으로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큰 타격을 줬다.

노동자들은 진작부터 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사회적 보호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이 처한 곤경은 글로벌화가 진행된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불평등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패션산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적 압박은 패션산업이 얼마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또한, 이 같은 상호의존성이 어려운 시기에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지도 입증했다. 세계은행이 2021년 말 최대 1억 5,000만 명이 극심한 빈곤에 빠져들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더는 이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하고 세계 각지에서 봉쇄 조치가 취해졌을 때 개발도상국에 사는 의류 노동자 수백만 명은 많은 고통을 겪었다. 패션 공급망이 무너지고, 결제가 마비되고, 주문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 방글라데시 전역의 의류 공장주들도 몸살을 앓았다. 100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 세계적 보건 위기로 인해 많은 노동자는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집으로 쫓겨갔다.

코로나19가 계속 맹위를 떨치는 와중에 인권 운동가들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소수민족 탄압을 방조하는 패션산업을 비판하기도 했다. 위구르족은 중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슬람 민족이며, 현재는 중국 공산당의 탄압 대상이기도 하다.

100만 명에 달하는 위구르인들이 구금됐고,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았다. 또한, 강압적인 노동에 투입되기도 했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2017~2019년 신장에서는 적어도 8만 명의 인력이 각지의 공장으로 차출됐다. 이들은 집으로 퇴근하지도 못하고 지속적인 감시를 받았다.

중국 관영매체들에 따르면, 이런 움직임은 2020년에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에는 여러 국제기구가 연합해 ‘위구르 지역의 강제 노동을 끝내자’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신장 지역의 강제 노동을 알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패션 브랜드의 목록을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 면화의 85%, 전 세계 면화 생산량의 약 20%는 신장 지역에서 생산된다.)

의류공장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아시아의 문제만이 아니다. 2020년 7월 영국 선데이타임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레스터의 한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시간당 3.5파운드(약 5,200원)에 불과했다. (영국에서 25세 이상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8.72파운드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비영리단체인 ‘상표 뒤편의 노동’에 따르면, 레스터의 몇몇 의류공장들은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 중에도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거의 지키지 않고 문을 열었다. 일부 직원들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음에도 근무를 계속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전 세계가 치명적인 질병과 싸우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저임금 노동자들의 전망은 암울하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학자들은 최근 연구에서 저소득 및 중하위 소득 국가에서 빈곤층이 부유층보다 코로나19로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미국에서도 이 경향이 두드러졌고, 전염병이 불러온 경제적 파장이 저소득 성인들에게 최악의 상황을 가져다줬다. 지난 2016년 ‘더 비즈니스 오브 패션’이 조직한 패션산업 혁신가들의 모임 보이시스(VOICES)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의 트렌드 예측가인 리 에델코르트는 이렇게 질문했다. “어떻게 옷이 샌드위치보다 저렴할 수 있나?”

그는 의문을 가졌다. 씨를 뿌리고, 재배하고, 수확하고, 실을 뽑고, 옷감으로 짜고, 자르고, 꿰매고, 마감하고, 프린팅을 입히고, 포장하고, 운송해야 하는 제품이 어떻게 2유로(약 2,638원) 정도의 비용으로 처리될 수 있는지 말이다. 그의 질문은 여전히 내 마음 깊이 새겨져 있다.

면화산업, 섬유산업, 의류산업 등은 모두 코로나19로 인해 썩은 민낯이 드러나기 훨씬 전부터 노동 착취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장이었다. 패션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삶에 필요한 최저수준의 임금보다도 적은 돈을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이러한 산업들은 본질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수준의 가격에 옷을 판매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시스템 속에서 옷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점점 줄어들었다.

방글라데시가 그렇다. 이 나라에는 400만 명의 의류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현지 정부가 설정한 최저임금보다 적은 돈을 받으면서 일한다. 한 달 월급은 100달러(약 11만 원) 미만이다. 합리적인 수준의 임금 지급을 옹호하는 인권 운동가들은 이곳의 노동자들이 편하게 살려면 임금이 이보다 두 배로 늘어야 한다고 말한다.

최고의 패션 브랜드라고 불리는 곳들조차 그 공급망 속에 노동자들의 착취가 존재한다. 디올이나 생로랑 같은 명품 브랜드들도 종종 인도의 하청업체에 아주 싼 값에 자수와 장식품 생산을 위탁한다. 고도로 숙련된 현지 장인들은 자신의 기술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합당한 임금을 누리지 못한다. 의류가 최종적으로 조립되는 곳은 유럽국가이기 때문이다. 의류업체들은 자신의 상품에 이들이 만든 부속품들이 들어갔음에도 ‘메이드 인 이탈리아’나 ‘메이드 인 프랑스’라는 딱지를 붙인다.

어떤 사람의 진정한 인성은 위기에 닥쳤을 때 나오는 행동에서 드러난다는 말이 있다. 2조 5,000억달러 규모의 세계 패션산업과 이 산업이 처한 위기에도 이 말이 적용될 수 있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매출은 크게 줄었고, 소매상들은파산했고, 소비자들은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더 비즈니스 오브 패션과 매킨지앤드컴퍼니의 공동 보고서에 따르면, 패션산업은 2020년 연말까지 최대 30%까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패션산업이 이 긴박한 위기의 순간을 이겨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패션산업은 근본적으로 불평등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업 모델을 재정비하는 데 더 큰 책임을 가져야 한다. 공장들과의 계약을 해지하거나 인간의 노동력을 로봇으로 대체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 분야에 가장 필수적인 노동자들, 즉 우리의 옷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의 노동 조건 개선에 의미 있는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다. 패션 기업들이 장기적인 회복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임란 아메드(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1)

임란 아메드는 글로벌 패션 전문지 ‘더 비즈니스 오브 패션’의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