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맞서 싸우면 소련처럼 망한다”

중국, .냉전 탓 국력 소진해 붕괴한 소련 사례서 ‘학습’

마오쩌둥식 ‘지구전’ 돌입…미국 대선까지 관망 의도도

미국과 중국이 상대국 총영사관을 서로 폐쇄하면서 본격적으로 신냉전 시대의 막이 올랐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중국에서는 미국이 의도대로 미중 전면 대결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미국의 공세에 일정 수준의 맞대응이 불가피하지만 양국 갈등이 ‘지구전’이 될 것이 명확해진 상황에서 미국이 걸어오는 동시다발적인 개별 전장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자국이 유리한 방식으로 싸움의 판을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다.

◇ 자국 내 반미 열기 ‘섬세 조절’하는 중국

외교가에서는 최근 중국이 비록 겉으로는 미국의 공세에 단호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응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중국 내 한 외교관은 30일 “중국이 최근 내놓는 여러 대미 조치는 기본적으로 자국민들에게 미국에 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며 “실제로는 미국 대선이 10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가 거는 싸움에 일일이 응하기보다는 일단 대선 결과를 보자는 관망 분위기가 강하다”고 밝혔다.

중국은 총영사관 상호 폐쇄 때 ‘눈에는 눈’ 식의 대응에 나섰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 이후의 미중 관계의 큰 흐름을 되돌리는 일대 사건인 만큼 한 치의 물러섬 없는 ‘반격’에 나서는 모습을 보일 필요성이 컸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최근 외교·군사·인권·기술 분야에 걸친 미국의 파상적인 공세에 중국은 대응을 상당히 절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지난 5월 중국을 대표하는 기술기업인 화웨이의 반도체 공급망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는 새 제재를 내놓았지만 중국은 이에 상응하는 대미 경제 보복에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작년까지만 해도 중국 정부는 희토류 수출 제한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다거나 미국 기업들을 사실상의 블랙리스트인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에 올리겠다고 노골적으로 위협했지만 최근 중국에서 이런 초강경 카드는 잘 거론되지 않는 분위기다.

아울러 중국 당국은 반미 정서를 일정 부분 조장하면서도 반미 열기가 지나치게 고조되는 것은 ‘섬세하게’ 통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청두 총영사관 폐쇄 장면을 국영 중국중앙(CC)TV로 생중계하고 수천 군중이 총영사관 정문 앞에 모여들게 허용하면서도 막상 현장에서 시민들이 반미 구호를 외치는 것을 제지한 것은 중국 당국의 이런 의도를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2012년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 영유권 분쟁 때 중국 당국은 베이징의 일본 대사관 앞에 수 만명에 달하는 성난 시위대가 몰려드는 것을 허용했다. 당시 일본 대사관에 물병과 계란 같은 물건이 수없이 날아가도 현장을 지키던 공안은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아울러 왕이 외교부장을 제외하면 공산당 정치국원 이상 고위층의 대미 강경 메시지도 극도로 자제되고 있다. 험악한 ‘말 전쟁’에는 실무진 수준인 외교부 대변인들과 인민일보와 환구시보 등 관영 매체들을 대신 앞세우는 모습이다.

◇ “미국과 정면으로 싸우다간 소련처럼 돼”

후시진 환구시보 총편집장은 이런 중국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글을 썼다.

중국공산당의 ‘비공식 대변인’ 노릇을 하는 그는 29일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올린 ‘중국과 미국은 대국이다. 관건은 누가 흔들리지 않고 전열을 유지하는가에 있다”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이 걸어오는 ‘안보 전쟁’에 국력을 소진하지 말고 중국이 흔들림 없이 ‘자기 일을 잘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서방에서 후 총편집장의 공개 발언은 ‘베이징의 컨센서스’로 여겨진다.

후 총편집장은 “걱정되는 것은 미국이 진짜 군사적으로 중국을 군사적으로 정복하거나, 경제·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압살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압박이 중국을 보수적으로 만들어 스스로 문을 닫게 만들고, 미국과 싸움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라며 “사실 소련이 당시 무너진 것은 미국과 싸움에서 경직되고 점점 말라감에 따라 내부 변화를 감당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 안보는 반드시 굳건하게 유지해야 하지만 동시에 국가안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라며 “국가안보가 너무 많은 사회적 자원을 차지하지 않는 속에서 자원을 다른 영역에 합리적으로 배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이 지구전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후 총편집장이 언급한 지구전이란 마오쩌둥(1893∼1976) 전 국가 주석이 중일 전쟁 당시인 1938년 정립한 개념이다.

마오쩌둥은 당시 널리 퍼진 ‘중국 필망론’과 ‘중국 속승론’에 모두 현실성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군사력과 경제력이 월등한 일본에 맞서 정면 대결이 아닌 유격전을 바탕으로 한 장기전으로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 “시간은 내 편”…자립 경제 강화 독려하는 시진핑

실제로 미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돌이킬 수 없는 시대의 조류로 굳어진 가운데 시진핑 국가주석은 최근 부쩍 경제적 자립을 강화할 것을 잇달아 주문하고 있다.

그는 지난 23일 베이징에서 열린 경제인 좌담회에서 “국내 수요를 만족시키는 것을 발전의 발판으로 삼아 완전한 내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과학기술 등의 혁신을 전력 추진하고 더 많은 성장 지점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둥베이 지역 시찰에서도 그는 중국산 자동차 시장 육성, 옥수수·콩 등 식량 증산 등을 강조하면서 ‘자립 경제’ 강화를 독촉했다.

이런 중국의 움직임에는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세계적으로 큰 이변이 없다면 중국이 수십년 안에 미국을 제치고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에 특히 큰 피해를 준 코로나19가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는 시점을 수년 앞으로 앞당길 것이라는 분석도 최근 부쩍 많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 주석 개인 간 대결의 측면에서도 시간은 시 주석에게 더욱 유리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대선에서 승리해도 4년 더 집권할 수 있지만 헌법을 고쳐 주석 임기 제한을 없앤 시 주석의 임기는 그의 ‘육체가 허락할 때’까지다.

지린성의 농장을 시찰하는 시진핑 [신화=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