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장군을 만든 여인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 손정훈 담임목사

옛날에 어느 나라의 왕이 하나 뿐인 딸에게 좋은 배필을 구해주길 원했다 한다. 딸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만큼 용기있고, 패기있는 청년을 구하기 위해서 왕은 방을 내걸었다.

‘누구든지 정한 시합에 나와 이기는 사람에게 내 딸을 주고, 사위로 삼겠다!’

구름 떼 같이 몰려든 청년들 앞에 주어진 시합의 내용은 악어가 가득 찬 호수를 헤엄쳐서 건너갔다 오는 것이었다. 아무도 감히 뛰어들 엄두를 못내고 그저 물끄러미 호수만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때 한 쪽에서 첨벙하는 소리가 나더니, 어떤 용감무쌍한 청년이 물에 뛰어 들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호수 반대편을 향해 헤엄쳐 갔고 무사히 돌아왔다. 모두의 박수갈채와 환호를 한 몸에 받으며 물 위로 올라온 이 용감무쌍한 청년에게 왕은 다가가 축하의 인사말을 전하려 했는데, 그 때 이 청년이 대뜸 소리질렀다고 한다.

“누가 밀었어!”

A.W. Tozer 는 가장 진실하고 안전한 리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정한 리더는 전혀 누군가를 리드할 의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면에서부터 울려나는 강한 감동과 주변환경의 영향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리더의 자리에 서게 되는 사람이다. 너무나 야심적인 사람은 리더로서 적절하지 않다. 진정한 리더는 신의 유산에 주인행세를 하려 하지 않으며, 겸손하고, 온유하고, 희생적이어서 하늘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지명한다 해도 따를 만한 사람이다.”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리더는 자기가 그 자리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임을 늘 자각하는 자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자격에 합당치 않음을 알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에 그 위치에 있는 것 뿐이며, 언제든지 그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그는 이상적인 리더상으로 꼽고 있다. 등 떠밀려 할 수 없이 리더의 자리에 나오게 되었는데, 일단 나오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혼신의 힘을 쏟아 달려나가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리더라는 것이다.

나는 리더가 아니니까 해당 없는 말이라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우리모두는 가정의 가장으로, 직장의 상사로, 국가의 공무원으로, 학생들의 교사로, 성도들의 목회자로…각자 다양한 분야와 단위에서 리더로 살수 밖에 없도록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Frederick Buechner 는 “신이 당신을 부르는 소명의 자리란 바로 당신의 가장 큰 기쁨과 세상의 가장 큰 갈망이 만나는 곳”이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내가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 마침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그 자리는 바로 내게 있어 최고의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는 소명의 자리가 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 리더의 자리에 뽑힌 것과 리더로서 기능하게 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리더는 타고난 기질과 능력이 중요하지만, 또한 만들어져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는 끝없이 좌절하는 오늘날의 리더들에게 큰 위로와 도전을 준다. 온달장군의 이야기는 본래 삼국사기에 나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599년 고구려 평원왕 당시 고구려 평양성에는 얼굴이 우습게 생겼지만 명랑했고, 가난해서 항상 밥을 빌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하던 온달이라는 인물이 살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떨어진 옷과 헤어진 신발로 시장을 전전하였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 저자 거리의 유행어는 궁궐담장을 넘어 평원왕의 귀까지 들렸는데, 당시의 평원왕은 소문난 울보였던 평강공주가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윽박지르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강공주가 16세가 되어서 귀족집안의 청년과 혼사가 오가게 되자 평강공주는 정색을 하고, 바보 온달에게 시집가겠노라고 말한다. 어떤 사가들은 평강공주가 전통적인 구 지배세력의 가문에 시집가기를 원치 않고, 신흥 무사계급에게로 시집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한사코 그 결혼을 반대했노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에 화가 난 왕은 그녀를 왕궁에서 내어 쫓는데, 평강공주는 하는 수 없이 갖은 어려움 끝에 바보 온달을 찾아간다. (그저 반대할 핑계를 댄 것 뿐인데, 아마 왕이 그렇게 까지 나올 줄은 몰랐나 보다!)

평강공주는 가져간 패물들을 팔아 집과 노비와 가축을 마련하고, 남편 온달에게는 궁에서 나온 최고의 말을 사주며, 학문과 무예를 연마하도록 도와준다. 결국 왕이 개최하는 사냥대회에 나가 온달은 탁월한 사냥실력을 자랑하게 되고, 이어 후주의 무제가 쳐들어 왔을 때 무공을 발휘하여 적들을 크게 물리침으로 왕의 인정을 받아 온달 장군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아는 분이 옥 비지니스를 하셔서 옥 원석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좋은 원석을 누군가 알아보고, 다듬고, 깎아 주고, 광을 내주면 한 나라의 옥새와 같이 귀하게 쓰일 수 있지만, 제 아무리 좋은 원석이라도 그와 같은 기회를 만나지 못하면 그저 한 낱 돌 덩어리로 굴러다니다 버려진다고 했다. 리더로 세워 놓기만 하고, 그가 온전한 보석으로 다듬어 지도록 참아주고, 기다려 주며, 또 승리의 감각을 익히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그는 리더로서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울 것이다. 참으로 리더는 뽑힐 뿐 아니라 만들어 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다음 리더를 세운 앞선 리더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특히 열두 제자를 세운 예수님은 코칭의 진수를 보여주신다. 실망스러운 언행을 넘어서 자신을 팔아넘기는 배신을 당하기까지 하여도 예수님은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해 주셨기 때문이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리더들을 세우는 시즌이다. 공동체의 지도자의 수준은 그 구성원들의 수준에 비례한다고 한다. 그래서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는 것이나 다름 없다. 아무쪼록 당신이 속한 가정과 일터 그리고 당신의 교회가 바보 온달이 온달 장군으로 변화되는 날까지 늘 격려해 주고, 기다려 주며, 응원해 줄 줄 아는 성숙한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소망한다.

손정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