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기동순찰대’ , ‘황비홍’ 그리고 나의 아내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 손정훈 담임목사

손정훈 목사

내가 처음 외국인을 본 것은 초등학교 시절 내가 살던 시골 여천 성당에서였다.

당시에 내가 다니던 성당의 주임 신부님은 벽안의 외국인이었고, 선교사로 한국에 오셔서 커다란 텐트를 쳐 놓고 미사를 집례하셨다. 나는 주일 미사에 참석하면 그 분의 설교말씀 보다는 그분의 생김새가 더 신기하여 오래도록 쳐다보곤 하였다. 그렇게 나와 다른 말을 쓰고, 다르게 생긴 사람들은 언제나 내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또 당시에는 T.V. 에서 “기동순찰대(원제:CHIPs)” 라는 미국 NBC 방송국의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던 때라서 더더욱 외국인과 외국어에 대한 나의 호기심과 동경심은 극에 달하였다. 그 시리즈에 등장하는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대 존(래리 윌콕스)과 펀치낼로(에릭 에스트라다)는 나뿐 아니라 또래 모두에게 그야말로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검은 선글라스, 가죽 부츠를 신고 날렵한 KZ1300 모터사이클에 앉아 햇빛이 쏟아지는 캘리포니아 해변가의 고속도로 위를 악당들을 쫓아 무한질주하는 두 사나이 모습은, 그래서 아이들의 책받침과 연습장 표지에 자주 등장하는 인기있는 소재였다.

그러다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을 때 나는 KBS, MBC 말고도 AFKN(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 이라는 방송이 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가 한국말로 번역해서 들었던 기동순찰대와 여러 프로그램들이 영어 원어로 방송되는 것이었다. 존과 펀치낼로의 목소리가 내가 알던 기름지고, 까불한 목소리와 다르게 들리긴 하였지만, 나는 참 반가운 마음으로 그 프로를 즐겨 시청하게 되었다.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 내용을 전혀 알아 들을 수 없다는 것… 알아듣기는커녕 두 주인공의 목소리가 한 사람 목소리 같이 아무런 차이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절망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내게 역사적인 순간이 찾아 왔으니 그것은 마침내 존과 판치낼로의 목소리가 내게 또렷이 구별되어 들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마치 난청환자가 수술을 받고 생전 처음 귀가 트여 세상의 소리를 듣게 된 것 같은 감동의 순간이었다. 이후로 나의 영어 탐구는 가속도가 붙어, 주로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는 치어스(Cheers)나 아빠는 멋쟁이(Silverspoon), 싸인필드(Seinfield), 코스비 가족(the Cosby show) 등과 같은 시트콤 코미디 프로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단어장을 펼쳐 들고 새로운 표현들을 적고 연구하는 나만의 학습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모두 다 똑같게 들리던 그 대사들이 조금씩 특정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말해지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듣기능력의 비약적인 성장을 경험하게 되었다.

짧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게 된 나는 이후에 그 언어를 소통의 수단으로 삼아 세계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또 우리 나라의 교회 컨퍼런스에 찾아 온 세계 각국의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 그리고 신학교 교수님들을 만나 배우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 모든 값진 만남은 모두 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그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가져다 준 놀라운 축복들이었다.

이제 나의 호기심은 13억 인구의 나라, 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 중국으로 옮겨졌다. 사실 나는 중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공산 혁명으로 무고한 피를 흘렸고, 6.25에 참전하여 한국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오욕을 남긴 나라, 돈만 밝히는 ‘비단이 장수 왕서방’이 사는 나라,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리보다 못사는 가난하고 지저분한 나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 막연히 가졌던 서양에 대한 동경심 때문에 영어를 공부하게 된 것과는 달리 중국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사실 나의 신앙이 자라나면서 갖게 된 가까운 이웃 나라에 대한 영적인 관심 때문이었다. 공산주의로 인해 피폐해 졌다가, 이제는 다시 급속한 자본주의 개편으로 말미암아 더욱 황폐해져 가는 그들의 영혼에 참된 인생의 대안과 세계관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마침 홍콩으로 사역지를 옮기게 되면서, 나는 과거의 경험을 거울 삼아 우선 흥미 있는 대중문화에 접근하면서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영화 ‘황비홍’의 주제가 ‘남아당자강(남자는 당연히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를 마스터 했고, 다음으로는 대만 가수 장혜매가 부른 청아한 노래 ‘청해(바다를 들어요)’를 듣고 쓰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어려서 영어를 습득하던 속도와 비교해 보면 참으로 답답하고 불쌍할 정도로 지지부진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내친 김에 중국 영화들도 가져다 놓고 대사 하나에 멈추어 자막을 따라하고, 다시 플레이하기를 지루하게 반복하고 나니 이제 간신히 성조에 따라 변하는 중국어의 독특한 멋스러움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짬짬이 공부를 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중국 본토를 오고 가며 그 동안 배운 몇 마디를 상점에서 써 보면 중국인들은 서로 쳐다보며 깔깔거리고 웃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싫지 않은 눈치였다. 그들을 사랑하기에 그들이 쓰는 말을 같이 쓰고 싶고, 그들과 어떻게든지 소통하고 싶어하는 이 이방인의 마음을 그들도 읽었기 때문이 아닐까? 새로운 언어를 습득해 가면서 나는 다시금 불변의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간절히 원하는 만큼 듣게 되고 보게 되고 또 알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아내는 대학에서 음악 밴드활동을 해서, 베이스 기타의 연주가 수준급이다. 아내를 만나기 전에 나는 베이스 기타가 도대체 어디다 쓰는 악기인지, 줄은 몇 가닥이나 있는지 관심조차 없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밴드가 다 같이 연주하면 그 중에 어떤 소리가 베이스 기타 소리인지, 또 잘 치는 베이스 기타리스트의 소리가 어떻게 다른지도 전혀 구별할 수도 없었다. 교회에서 집회가 있는 장소마다 사랑하는 애인을 대신해서 이 무거운 쇳덩어리 악기와 그 보다 더 무거운 하드 케이스를 수없이 들고 나르면서, 차라리 플룻하는 여자를 만났더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불평도 해 보았다. 그러던 나에게 참으로 신비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점점 더 베이스 기타 연주에 빠져들어가게 될 뿐 아니라 머지 않아 Full Band 가 동원된 연주 속에서도 아내의 베이스 기타 음을 잡아 낼 만한 득음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아무리 보컬이 탁월하고, 다른 연주자들이 많아도 나에게는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내 여자의 모습만 스포트라이트에 비추인 것 처럼 환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사랑하는 만큼 듣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만큼 보게 되는 것이다. 그 대상은 언어일수도, 예술일 수도, 연인일 수도, 아니 어쩌면 초월자일 수 도 있겠다.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존재일 지라도 내가 간절히 소통하기를 원한다면 그 뜻은 반드시 이루어 지게 되는 법이다. 그 마음, 어쩌면 피조물과 간절히 소통하기를 원하는 창조주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