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장례식장에서 다시 생각한 ‘이웃’의 의미

삶의 속도가 멈춘 자리에서 떠올린 질문들…미디어의 선택은?

32년전 한국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기자가 누군가를 배려하는 직업군은 아니었기에 현명한 관계에 대해 배울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선배들에게 배운 몇 안되는 교훈 가운데 하나가 “경사는 몰라도, 조사는 빠지지 말라”입니다. 한마디로, 결혼식은 못 가도 장례식은 꼭 가라는 말입니다. 지켜야할 게 많지 않은 덕분인지 이것 만큼은 지금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어제(29일) 지인의 아내 장례식에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애틀랜타 K 창간 이후 7년간 묵묵히 독립 미디어를 후원해왔고, 매달 한번씩 만나 한인사회를 함께 걱정했던 ‘친구같은 회장님’이 갑자기 아내를 잃었습니다. 며칠 전 기독교 용어로 ‘소천’ 소식을 들은 뒤 주차된 차 안에서 혼자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을 안고 장례식장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시간에 한참 앞서 도착했지만 주차 공간은 이미 만석. 미국 생활 25년만에 이렇게 많은 조문객이 참석한 장례식은 처음입니다. 식장 입구부터 지인들과의 목례가 이어졌고 좌석 옆과 앞뒤에 악수로 인사해야 할 한인 인사들이 즐비했습니다. 장례예배를 주재한 담임목사도 대학 동문.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성경 신약의 디모데 후서 4장7~8절을 통해 고인을 추모하며 “사랑할 사람이 옆에 있을 때 아끼지 말고 사랑하라”고 권유하자 옆에 앉아있던 자칭 ‘무신론자’ 한인 단체장이 “이번 일요일에 저 교회 나가고 싶네”라고 귓속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장례식의 하이라이트는 장남의 추모사였습니다. 애틀랜타 공립병원에서 저소득층 응급 어린이 환자를 돌보는 의사인 장남은 지난 4일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눈물지었지만, 어쩌면 “뻔한 주제”인 이민 1세대 어머니의 헌신에만 초점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4년전 여름 휴가에서 있었던 어머니와의 갈등을 소개하며 ” 잘못한 나를 먼저 토닥여준 엄마의 모습에서 진정한 용서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며 “갈등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이해와 사랑이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차량을 헤치고 장례식을 빠져 나오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전 눈오는 거리에서 체포된 5살 어린이의 눈물 맺힌 눈망울과, 이민 단속반에 맞서다 10발도 넘는 총알에 맞아 숨진 젊은 간호사가 교차되며 미움과 갈등이 넘치는 이 시대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 왔습니다. 분노와 갈라치기를 노골적으로 이용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이 가장 크겠지만 이 시대의 우리들도 혹시 그런 질주를 즐기고 있는 건 아닐까요?

가까이 눈을 돌려보면 한인사회의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크지 않은 공동체에서 봉사단체를 운영하다 내분이 생기고 법정 다툼을 벌이는 일이 잦습니다. 또한 분쟁의 당사자들은 평생 얼굴을 대하지 않을 만큼 서로를 증오하게 됩니다. 얼마전 갈등을 벌이던 상대방을 용서하고 문병을 다녀온 한인 원로에게 “왜 그런 사람을 찾아가느냐”고 힐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합니다.

본보의 새 뉴스레터 프레임(링크)에 소개된 프레드 로저스는 ‘미국의 마지막 성인(聖人)’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30여년간 어린이 프로그램 ‘미스터 로저스의 이웃’에 출연했던 그는 이웃(neighborhood)이라는 개념을 통해 어린이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의 영혼을 어루만졌습니다. 그가 1977년 평생공로상을 받으며 에미상 시상식에서 한 연설은 가장 위대한 방송 장면의 하나로 꼽힙니다.

그는 긴 연설 대신 “10초 동안 당신을 지금의 모습이 되도록 도와준 사람, 당신을 돌보고, 당신 삶에 최선의 일이 있기를 바랐던 사람을 생각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처음에는 장난인줄 알고 웃었던 유명 배우들은 그가 시계를 바라보며 시간을 재겠다고 하자 진지한 얼굴로 바뀌었고 많은 사람들이 몇초 지나지 않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해당 장면을 보며 여러 얼굴이 떠올랐지만 수년전 깨어지고 상처받은 아들을 맞이했던 구순 노모가 가장 앞에 있었습니다. 치매였지만 막내 아들의 얼굴을 알아보시고 “궂은 일 다 잊고 재미있게만 살아라”하신 말씀이 생각나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로저스는 인종차별이 일상이던 1960년대 흑인 경찰관 역할을 맡은 배우와 함께 수영하는 모습을 방송했고, 방송국에는 엄청난 항의와 분노의 편지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해명이나 사과를 하는 대신 같은 장면을 다음 방송에서도 반복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내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일 뿐입니다.”

목회자 출신인 그는 미디어의 영향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로저스가 선택한 방식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를 몰아세우거나 반대편을 비난하는 대신, 아이들이 만나는 세상을 조금 더 이해와 사랑이 있는 곳으로 만들자는 약속이었습니다. 그 약속은 방송이 끝난 뒤에도 남아 미움이 너무 쉬워진 시대에 다시 호출되고 있습니다.

요즘 미국의 공기는 거칠어졌습니다. 이민 단속을 둘러싼 충돌은 누군가의 정치적 주장으로 끝나지 않고 거리의 공포와 가족의 불안으로 이어집니다. 아이가 잡혀가고, 젊은이가 쓰러지고, 그 장면이 또 다른 분노의 연료가 됩니다. 하지만 분노는 언제나 다음 표적을 찾습니다. 어제는 이방인이지만 오늘은 이웃이 되고, 결국은 우리 울타리 안쪽으로 되돌아옵니다. 물론 한인사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로저스가 요청한 10초는 그저 감동을 주는 장면만은 아닙니다.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를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상대를 공격하려는 마음보다 나를 붙잡아준 손을 먼저 기억하게 됩니다. 그 기억이 돌아오는 순간 세상의 속도도 잠깐 느려집니다. 그리고 그 잠깐이 더 미워하지 않을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디어는 결국 선택의 문제입니다. 갈등을 키워 더 많은 클릭을 모을 수도 있고, 느리지만 다른 길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언어를 쓰는 일은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더 어렵고, 그래서 더 필요합니다. 말이 빠르게 퍼질수록 더 조심해야 하고, 분노가 쉽게 번질수록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느림이 더 절실해집니다.

애틀랜타 K와 아메리카 K, 그리고 프레임은 그 선택 앞에서 늘 긴장하겠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몰아세우는 언어를 쉬운 길로 삼지 않겠습니다. 공동체가 서로를 포기하도록 부추기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쓰지 않겠습니다. 최소한 이 매체들이 ‘갈등의 가속페달’이 아니라 ‘관계의 브레이크’가 되도록 장례식의 얼굴들을 기억하며 계속 점검하겠습니다.

장례식장을 나오며 떠올린 것은 결국 한 문장이었습니다. “사랑할 사람이 옆에 있을 때, 아끼지 말고 사랑하라.” 이 단순한 문장이 오늘의 정치뉴스보다, 유튜브 피드의 알고리즘보다 오래 남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사랑을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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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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