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위기극복에 필요한 지도자의 덕목은?

‘모범단체’ 동남부연합회 분열 위기…”한인회 전철 밟을라”

조직원들과 진실 논쟁 대신 “내 탓이오, 양보하는 지혜를”

기자가 지난 2020년 9월 당시 김윤철 애틀랜타한인회장의 연방 코로나기금 허위 수령 및 유용 의혹을 보도하자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언론사를 자처하는 한 사이트가 김 회장을 두둔하는 내용을 시리즈로 소개했고 김 회장은 이 사이트를 통해서 자신의 변명을 확성기처럼 내보냈다.

정부기관의 증거자료를 근거로 제기한 의혹이었는데도 일부 인사들은 “봉사기관인 한인회의 활동을 방해하려 한다”거나 “애틀랜타 K 탓에 모금과 후원이 막혀 한인회가 망하게 생겼다”며 ‘나쁜 기사’라고 몰아붙였다. 이에 힘을 얻은 김 회장은 한인회관에 애틀랜타 K 기자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공지까지 붙여놓았다.

의혹이 모두 사실로 드러나고 리더 1명이 50년 전통의 애틀랜타한인회 위상을 얼마나 추락시킬 수 있는지 알고난 후에야 당시 기자를 비난했던 인사들조차 “그 때 대책을 세워 수습했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하고 있다. 물론 김 회장을 비호했던 어용 언론사는 이미 문을 닫고 사라진 뒤였다.

◇ “문제 있지만 체전 성공위해 참으라고?”

2년도 지나지 않아 40년 전통의 동남부한인회연합회에서도 예상치 못한 불협화음이 크게 노출되고 있다. 노골적인 비리의혹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지만 지도자의 독단적인 운영방식과 소통 부재에 대한 경고음이 켜진 것이어서 애틀랜타한인회 사태에서 배울 점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본보의 보도(링크) 직후인 지난 20일 열린 연합회의 기자회견은 이같은 사태를 수습하려는 목적보다는 “우리에게는 잘못이 없다”며 감정적인 다툼을 계속하자는 의도 밖에 읽히지 않아 안타까움을 샀다. 최병일 회장에 대해 연합회 전직 회장들과 지역 한인회가 제기한 문제점은 일부 ‘뜬 소문’을 근거로 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합리적인 의심과 ‘포용의 리더십 부재’에 대한 지적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재정은 공개하면 되는 것이고, 모든 소문은 반대파가 만들어낸 악의적이고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설명만 이어졌다. 또한 어용 언론도 어김없이 등장해 기자회견에서 질문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나쁜 기사가 나갔으니 이제는 좋게 써야 한다”며 보도지침을 강요하는 황당한 모습까지 연출했다.

무엇보다 이날 연합회가 즐겨 사용한 논리는 “중요한 행사인 동남부 체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일단 조용히 넘어가고 체전 후에 다시 논의하자”는 주장이었다. 기자에게도 “보도 때문에 앞으로 체전 추가 모금은 물건너 갔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얼핏 생각하면 그럴 듯한 주장이지만 그동안 수습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모르쇠로 대처하다 일을 키워 결국 불참사태까지 만들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이같은 논리는 애틀랜타한인회 사태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었고 체전 모금은 이미 마무리된 상태다.

◇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포용의 리더십 보여야

연합회는 또한 “어른들의 싸움 때문에 차세대들이 체전에 참가하지 못해 피해를 본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차세대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할 요량이었으면 애초부터 화합하고 포용하며 본이 되는 모습을 보였여야 한다. 감정 대립으로 분열하는 단체가 ‘차세대들을 위한 행사’를 외쳐봤자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지도자의 리더십 가운데 가장 최고가 선으로 선을 이루는 ‘이선제선’이며, 그 다음 단계가 악을 선으로 다스리는 ‘이선제악’이라고 한다. 리더십에 대한 도전과 반발이 있을 때 이를 강하게 제압하려고 할 경우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낳을 수 있는데 지금 연합회의 상황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은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고도 종전 후 실시된 선거에서 참패해 정계은퇴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이해할 수 없는 민심이었고, 억울한 심경에 칼을 갈만도 했지만 처칠 수상은 담담하게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그저 국민의 종이었기 때문에 여러분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동안 봉사할 수 있게 해주신 따뜻한 친절에 충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명연설을 남겼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한 연합회장 특보는 신상발언을 통해 “오늘 여러 반박과 해명이 나오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지도자인 최병일 회장이 잘못한 것”이라고 지적한 뒤 “회장을 보좌한 임원진들도 함께 반성해야 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전직 회장들에게 아무리 화살을 돌려봤자 결국 실권을 쥐고 있는 ‘강자’인 현 회장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병일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는 사실 관계를 따져 서운함을 풀려고만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불만을 품은 인사들과 소통해야 한다. 윤리 교사 출신인 최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의 의견 대신 본인의 소신을 먼저 생각하다 소통에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가장 중요한’ 동남부 체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모범단체인 연합회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일을 막았으면 한다.

이상연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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