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열풍으로 인간의 삶 곳곳에서 영향력을 확대한 인공지능(AI)이 이제 예술의 영역에도 깊숙이 손을 뻗고 있다.
20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캐나다 소설가 겸 언론인 스티븐 마쉬는 3가지 AI 프로그램을 이용해 ‘작가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미스터리 중편 소설을 집필했다.
이 작품은 푸시킨인더스트리라는 회사를 통해 다음달 오디오북과 전자책(e북)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를 구상하고 구체적인 명령어를 입력한 것은 마쉬지만, 그의 지시에 따라 세부 내용과 문장들을 만들어 낸 것은 AI다.
마쉬는 NYT에 “내가 100% 이 작품의 창작자”라면서도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소설 속) 문장들을 창조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부터 AI를 이용하거나 AI에 관한 집필 활동을 해오던 마쉬는 지난 1월 제이콥 와이스버그 푸시킨인더스트리 최고경영자(CEO)의 요청으로 AI 기술을 이용해 살인 미스터리에 관한 작품을 쓰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우선 마쉬는 챗GPT를 이용해 전체적인 줄거리 개요를 구성했다. 다만 AI가 구체적인 문장을 쓰는 데에는 능숙하지만, 줄거리 구성은 “끔찍했다”고 그는 전했다.
이어 ‘수도라이트’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해 문장을 늘리거나 줄이고, 대화체로 바꾸거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문체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고 마쉬는 설명했다.
또 그는 ‘코히어’의 AI 프로그램으로 생생한 묘사와 비유를 담은 문장을 창조할 수 있었다.
NYT가 소개한 소설 발췌본을 보면 AI는 작중 인물이 맛없는 나초를 먹는 장면을 “치즈는 굳었고, (나초)칩은 질척한 데다 축축했고 마치 호수 위 거품 같은 기름막으로 얼룩졌다. 한입 베어 물 수밖에 없었지만 상한 맛과 치즈를 흉내낸 듯한 역겨운 맛이 느껴졌다. 그는 맥주를 벌컥 들이키며 입을 헹궜지만 햇볕에 너무 오래 놔둔 것처럼 그 맛도 엉망이었다”라고 묘사했다.
마쉬는 AI가 작가들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며 ‘알고리즘 글쓰기’의 성장에 대해 낙관적이라고 밝혔지만, 많은 작가와 출판사는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지 않을까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유명 싱어송라이터 더 위켄드와 힙합 스타 드레이크의 신곡으로 소셜미디어에서 화제를 모았으나 AI가 만든 가짜 노래로 밝혀진 ‘허트 온 마이 슬리브’도 AI의 예술 진출을 둘러싼 논란을 잘 보여준다.
‘고스트라이터’라는 이름의 네티즌이 더 위켄드와 드레이크의 목소리를 ‘AI 버전’으로 그럴듯하게 합성한 이 곡은 틱톡, 스포티파이, 유튜브 등의 플랫폼에서 수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다 두 가수의 소속사인 유니버설뮤직의 요청에 따라 이번 주 일제히 삭제됐다.
텍스트, 이미지, 음성, 영상을 넘나드는 생성형 AI의 창작 능력은 모든 종류의 창작 산업을 재편성하고, 아티스트와 팬들도 새로운 표준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허트 온 마이 슬리브’는 AI를 통해 팬들에게 익숙한 목소리를 마치 진짜인 것처럼 편집했다는 점에서 저작권 논쟁을 더욱 가열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에 유니버설뮤직은 “음악 생태계의 모든 이해당사자는 예술가, 팬, 인간의 창의적 표현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딥페이크와 사기, 예술가에게 당연하게 주어져야 할 금전적 보상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편에 설 것인지 정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이 곡을 올린 ‘고스트라이터’는 유튜브를 통해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며 음악계의 AI 논란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