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마당에 공 주우러 간 6세 총맞아

노스캐롤라이나서, 고삐풀린 ‘묻지마 선제타격’

초인종에 ‘탕’, 주차 중에 ‘탕’, 어린이한테도 ‘탕’

농구공 주으러 갔다 이웃의 총격으로 얼굴에 찰과상 입은 미국 6세 소녀
농구공 주으러 갔다 이웃의 총격으로 얼굴에 찰과상 입은 6세 소녀 [AP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에서 사적 공간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총을 맞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20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소도시 개스턴에서 6세 소녀가 이웃집에서 총을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모와 함께 갖고 놀던 농구공이 이웃집 마당으로 흘러 들어간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사격은 무차별적으로 이뤄져 현장에 있던 소녀와 부모가 모두 총에 맞았다.

화이트는 불행 중 다행으로 얼굴에 찰과상을 입는 것으로 그쳤다. 하지만 아버지는 등에 총을 맞아 폐와 간이 손상됐고, 어머니도 팔꿈치를 다쳤다.

싱클테리는 다른 한 명에게도 총을 쏘았지만 총알이 빗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총격 뒤 현장에서 달아났다가 플로리다주에서 붙잡혀 살인미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미국에서 타인을 무작정 경계하는 까닭에 이뤄지는 이 같은 묻지마식 총격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이날 총격을 비롯해 언론보도로 널리 알려진 비슷한 사건이 최근 일주일만 따져도 최소 4건이다.

16세 소년이 초인종 잘못 눌렀다가 총맞은 집
16세 소년이 초인종 잘못 눌렀다가 총맞은 집 [AP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는 지난 13일 부모 심부름을 하던 중 다른 집 초인종을 잘못 누른 16세 흑인소년 랄프 얄이 백인 집주인 앤드루 레스터(84)의 총격을 받고 심하게 다쳤다.

뉴욕주 시골 마을 헤브런에선 지난 15일 친구의 집을 찾다가 다른 집 차고 진입로에 들어간 케일린 길리스(20)가 집주인 케빈 모해넌(65)의 총을 맞고 사망했다.

텍사스주 엘긴에서는 카풀 장소에서 착각을 하는 통에 남의 자동차에 타려고 하던 치어리더 2명에게 총을 쏜 남성이 체포돼 조사받고 있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련의 사건이 우연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비영리 싱크탱크 록펠러연구소의 재클린 실드크라우트 총기폭력연구소 전무이사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총기 폭력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은 훨씬 더 큰 문제의 일부”라고 지적했다.

사적 공간에 접근하는 이들을 겨냥한 총격을 부추기는 제도적 원인으로는 미국 특유의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 원칙이 지목된다.

위협에 피할 수 없으면 물러나지 말고 맞서라는 의미를 지닌 이 개념은 정당방어 법률로 구체화해 여러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는 죽거나 다칠 가능성이 합리적으로 의심되는 위협에 직면한 이들이 치명적 물리력을 선제적으로 쓰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 제도다.

이런 법령은 플로리다주가 2005년 도입한 뒤 다른 주로 급속히 확산해 지금은 최소 28개주가 운용하고 있다.

미국 의학저널(JAMA)에 2022년 게재된 한 논문에 따르면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률은 미국 전역에서 살인사건이 8% 증가하고, 그 중에서도 총기살인은 11% 늘어난 것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존스홉킨스 공중보건대 산하 총기폭력해결센터의 대니얼 웹스턴 연구원은 총기업계가 총을 약탈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방안으로 홍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당방위 관련 법규뿐만 아니라 총기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갖고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소지허가(CWP)도 성급한 총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에서 총기 소지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기이던 2021년을 기점으로 급증했다.

룻거대 뉴저지총기폭력연구센터의 마이클 어네스티스 박사는 대중이 전염병 창궐기에 공포를 느끼면서 총기 소지자가 늘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사람들이 당시 위협으로 가득한 세상을 보게 됐다”며 “그들은 무슨 수단을 쓰든 간에 그런 위협을 제거하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간주하게 됐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