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금문교에서 만난 뜻밖의 은혜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 손정훈 담임목사

그러니까 한 20여년 전의 일이다. 다니던 신학대학원의 교환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된 것이. 숲으로 둘러싸인 아늑하고 작은 마을, San Anselmo에 자리한 학교에서 기숙사와 교실,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하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좀처럼 시내 구경을 나갈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유학생이 차를 구할 수도 없었기에 답답할 때면 그저 자전거나 하나 얻어다가 동네 몇 바퀴 돌고 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뜻밖의 행복이 찾아 왔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베이 건너편 Berkley 대학과 GTU에서도 수업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곳으로 건너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가 특별히 미니 밴을 마련해 준 것이었다.

유학생들 중에는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운전을 도맡아 하는 몇몇 사람들에게는 밴을 비교적 자유롭게 운행할 수 있는 작은 특권이 주어졌다. 그래서 여럿이 타고 버클리로 통학 할 때는 할 수 없이 직선코스로 다녀야 하지만, 혼자만 운전해서 올 때는 조금 돌더라도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경유해서 태평양 바다를 바라보며 환상적인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끈기 있게 기다리던 어느 날, 마침내 아무도 타지 않은 빈 밴을 몰고 도시로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향해난 구비 구비 언덕을 지나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산 비탈 도로 위로 안개가 넘실 넘실 넘어오는 신비로운 풍광이었다.

태평양에서 불어온  바람과 육지의 바람이 만나면서 급격한 온도 차로 인해 생겨난 장관이었다. 그리고 이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아아! 아침 햇살을 맞아 눈부시게 빛나는 금문교의 붉은 교각이었다. 오른 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 바다와 깎아지를 듯한 절벽들이 한 눈에 들어왔고, 왼쪽으로는 San Francisco 만에 흰 새떼 같은 보트들이 여기저기 한가로이 노니는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져 있었다.

처음 차를 몰고 들어선 금문교 위는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시속 수십km 의 바람 때문에 핸들이 다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다리가 건설되기 전에는 Golden Gate 해협을 가로지르는 페리를 타기 위해 심하면 양쪽 10Km 까지 차량들이 줄을 지어 기다려야 했지만, 도저히 다리를 건설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은바로 이 바람 때문이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불규칙하고 깊은 해저 지형과 빠른 조류 등 온갖 악조건을 이겨내며 현수교 (Suspension Bridge)를 건설 할 수 있게 된 것은 요셉 B. 스트라우스(Joseph B. Strauss)라는 어느 꿈쟁이 건축가가4년 동안 중국 인부들과 고락을 같이 하며 분투한 덕분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 수 많은 중국인 인부들이 다리에서 떨어져 죽었다 하니, 얼마나 난공사였을 지 짐작이 간다.

그래서 였을까? 설계자는 다리 교각을 중국인들이 길하다 여기는 붉은 색 계통의 ‘인터내셔널 오렌지 색(International Orange)’으로 칠하였다. 두 교각은 해마다 덫 칠을 하는데, 얼마나 다리가 큰지 한쪽에서 칠을 끝내 갈 무렵이 되면 다시 다른 쪽에서 칠을 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어쨌든 백만불 짜리 금문교 관광을 잘 마치고 톨게이트 앞에 도달한 나는 내키지 않는 심정으로 꼬깃한 톨비 3달러를 내밀었다. 그리 큰 돈은 아니었지만 학생회관 냉장고에다 동네 주민들이 채워 준 캔 음식을 먹으며 아르바이트 5개를 동시에 감당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IMF 시기의 가난한 유학생인지라 사실 톨비 3달러는 조금 아까운 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금 징수원 아가씨가 돈은 받질 않고 그저 환한 미소만 짓는 것이었다. 뒤에 차들도 밀려 있는데 왜 빨리 받질 않느냐는 눈치를 보냈더니 아가씨가 하는 말.

“앞서 지나간 분이 당신 요금까지 다 내 주었어요. 그냥 지나가세요”

“네? 그게 무슨 말이예요?”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어서 다시 물어보니, 더 아리송한 답이 돌아왔다.

“뭐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생겼나 보지요. 어서 지나가세요”

어리둥절하여 있는 내 앞에 저 멀리 앞서 지나간 승용차 창문이 열리며 얼굴도 모르는 운전자가 정겹게 손을 흔드는 장면이 보였다. 갑작스런 “횡재”를 당하고 보니 어안이 벙벙했다.

밝은 햇살이 떠오르는 샌프란시스코의 출근길로 합류해 들어가면서도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도대체 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랑하는 여인이 오늘 프로포즈에 “Yes”를 한 걸까? 직장에서 승진을 했을까? 아니면 오늘 가정에 새로운 아기라도 태어난 걸까? ’

앞서 간 낯선 운전자에게 찾아온 행복의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에게 일어난 행복이 나에게 까지 전염되어 덩달아 기쁜 마음이 든 것이었다.

오래된 일이지만 가끔씩 그 일을 생각하면 한 단어가 떠오른다…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졸지에 당하는 좋은 일을 성경은 ‘은혜’라고한다. 오늘 내가 수고하지 않은 쌀로 따뜻한 밥 한 공기를 먹고, 계란부침 하나를 먹게 된 것도 누군가로부터 온 은혜다. 내가 오늘 가고 싶은 곳에 마음껏 갈 수 있고,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는 것도 누군가의 수고로 말미암은 은혜다.

“Too good to be true”. 너무나 좋은 일이 일어나서 도무지 믿겨지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아무런 자격도 없는 우리 같은 죄인들이 죄 하나 없는 분의 희생적인 사랑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고 생명을 얻게 된 것은 은혜 중에서도 ‘최고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날 면제 받은 3달러는 적은 돈이었지만, 당연하지 않은 많은 것을 당연한 마음으로 누리던 나에게 은혜의 소중함을 다시 상기시켜 준 소중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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