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대법관들 콜로라도 판결에 잇단 문제제기…트럼프 “보기에 아름다웠다”
미국의 11월 대선을 앞두고 연방 대법원이 8일 1·6 의사당 폭동 사태와 맞물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통령 후보 자격 문제에 대한 심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그러나 첫날 심리를 마친 뒤 미국 언론에선 당초 예상대로 콜로라도주 판결이 기각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한 초유의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에 대해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이 회의적인 시각을 표출한 데다, 진보 성향의 대법관도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2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변론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 측 조너선 미첼 변호사, 트럼프 전 대통령의 후보 자격에 이의를 제기한 콜로라도주 유권자를 대리하는 제이슨 머리 변호사 등이 참석했다.
연방 대법관 9명이 서열순으로 각 변호사와 문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변론은 헌법 조문을 둘러싼 법리적 공방에 집중됐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쟁점은 콜로라도주 대법원이 주내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데 사용한 헌법 14조 3항이 대통령직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등이었다.
미국 헌법 14조 3항은 미국 정부 관리 등으로 헌법 수호 서약을 한 자가 폭동·반란에 가담하거나 적에게 원조나 편의를 제공한 경우 연방 상·하원 의원이나 대통령 및 부통령을 뽑는 선거인 등이 되거나 공직을 맡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의회에서 3분의 2의 찬성으로 사면받은 경우는 예외로 하고 있다.
미첼 변호사는 변론에서 헌법상의 ‘미국 정부 관리'(officer of the United States) 표현과 관련, 이는 “임명된 공직자만 가리키며 대통령이나 의회 구성원처럼 선출된 개인을 포함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임명직 관리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또 헌법 14조 3항은 자체적으로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의회의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정 후보자가 공개적으로 내란 가담을 인정한다고 해도 헌법 14조 3항은 후보자의 출마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조항은 공직을 맡는 것(holding office)을 금지하는 것이지 공직에 출마하는 것(running for office)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내란에 가담한 후보자가 당선될 경우 실제 공직에 취임하려면 의회가 이를 허용할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머리 변호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법원이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헌법 14조 3항에 대한 특별한 예외를 만들어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면서 “이 주장을 기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도 공직자이고 의회뿐만 아니라 주(州)도 내란 가담자의 입후보를 금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폭도들의 의사당 공격을 선동하면서 내란에 가담했다”면서 “그는 그렇게 함으로 스스로 공직을 맡을 수 있는 자격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머리 변호사는 “(우편 투표용지 발송 하루 전인) 2월 11일까지 결론을 내리면 콜로라도주 유권자들이 법원의 판결을 알고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신속한 판결을 요청했다.
변론이 법리에 집중되면서 1·6 사태의 실체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문답은 거의 없었다.
다만 진보 성향의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1·6 사태가 내란인지 질문했으며 미첼 변호사는 “그것은 폭동이지 내란이 아니다”고 답했다.
미첼 변호사는 그 이유로 “내란이 되려면 폭력을 통해 미국 정부를 전복하려는 조직된 공동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관들은 양측 변호사들에게 법 기술적 측면에서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이 과정에서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에 대해 전반적으로 회의적이라는 인상을 남겼다고 미국 언론은 평가했다. 연방 대법원은 보수 성향 6명, 진보 성향 3명 등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돼 있다.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변론 과정에 헌법 14조 3항이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에 속했던 곳을 포함해 주(州)의 권한을 제약하고 연방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만들어졌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그는 그러면서 “콜로라도주 판결이 유지될 경우 다른 쪽에서도 자격 박탈 소송을 낼 것”이라면서 “민주당 후보가 누가 됐든 일부 주의 투표용지에서 제외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일부 주가 대선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는 매우 걱정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도 “3항은 공직을 맡는 것에 대한 것이지 공직에 출마하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면서 “만약 주나 의회가 이보다 더 나아가 ‘당신은 공직에 출마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대통령 입후보 자격을 추가로 만드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역시 보수 성향인 브랫 캐버노 대법관은 의회의 선제적 조치 없이 14조 3항이 집행될 수 없다는 1869년 판례를 거론하기도 했다.
다만 진보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변론 문답 과정에 “내란범이 주 공직을 맡는 것을 박탈하기 위해 주 정부가 3항에 의존한 사례는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변론 종료 뒤 “이념적 스펙트럼 전반에 걸쳐 대법관들은 콜로라도주 대법원 판결의 여러 측면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면서 “대법원은 압도적으로 이를 기각하는 판단을 내릴 준비가 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NBC 방송도 “대법원은 오늘 콜로라도주 판결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표시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연방 대법원의 변론 종료 뒤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것(대법원 변론)은 여러 측면에서 보기(watch)에 아름다운 것이었다”라면서 “오늘 (변호사의) 발표는 좋았고 내 생각에 (대법관들에게) 잘 받아들여졌다”고 평가했다.
연방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후보 자격 문제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수일 또는 수주 내에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콜로라도주 등에서 대선 경선이 진행되는 3월 5일 슈퍼화요일 이전에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1·6 의사당 폭동 사태와 관련,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란을 선동했다고 보고 헌법 14조 3항을 적용해 콜로라도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했다.
미국 헌법 14조 3항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 측 인사들이 공직을 맡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대통령 후보 자격 판단 문제에 사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