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초대석] “그가 걷는 곳이 곧 길이 된다”

가상환경 분야 미국 최고 전문가 UGA 안선주 교수 인터뷰

VR, 메타버스 태동 때부터 앞선 연구…연방정부도 지원나서

권위있는 크리그바움 언더 40상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기도

UGA 안선주 교수

“17년전 미국에 와서 가상환경을 연구한다고 하니까 미국 학계에서도 의아해하는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이 분야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믿었어요”

조지아대학교(UGA) 저널리즘 스쿨의 안선주 교수(영어명 선주 그레이스 안) 교수는 미국 최고의 가상환경 연구소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게임 및 가상환경 연구소(GAVEL, Games And Vitural Environment Lab)를 이끌고 있다. 이 연구소는 학문간의 경계를 넘어 가상환경 및 복합현실이 인간 행태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 커뮤니케이션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 미국으로 유학해 스탠퍼드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안 교수는 연구 초기부터 가상현실이 사용자들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는 스탠퍼드에도 가상현실 장비가 거의 없었고 학계에서도 생소한 분야라 일부는 전공을 바꾸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안 교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을 가상현실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학의 영역을 넘어서 다른 학문과의 융합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VR(가상현실) 소프트웨어와 코딩 등에 대한 조예도 쌓으며 미국 최고의 전문가 가운데 한명으로 성장하게 된다.

안 교수는 “가상환경 분야를 오랜 기간 연구한 학자도 드물고 소프트웨어 제작과 적용, 인간 대상 실험 등까지 전문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기관도 많지 않다”면서 “미국 학계에서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국방부 등 연방 정부로부터 기금을 지원받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에 따르면 GAVEL이 지난 5년간 연방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기금만 1000만달러를 넘어선다.

안선주 교수가 가상현실 헤드셋을 직접 시연하고 있다.

국방부의 연구 과제 가운데 하나인 해외 파병 군인과 가족을 위한 가상현실 속 ‘패밀리 룸’ 프로젝트는 세계 최대 관련 회의인 I/ITSEC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군인들이 VR헤드셋과 소프트웨어를 통해 가족과 만나게 하는 개념으로 가상환경이 군인과 가족의 정서와 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 호평을 받았다.

안 교수는 매주 목요일 연구원들과 미팅을 갖고 연구 계획을 점검한다. 안교수는 연구소 소속 프로그래머가 자체 개발한 가상환경 소프트웨어를 직접 실험하고 수정이 필요한 사항을 꼼꼼히 챙기는 한편 인간 대상 실험의 주의점 등을 연구원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안 교수는 2011년 조지아대에 임용된 후 연구소를 설립했고 10여년 만에 미국 최고의 시설 가운데 하나로 성장시켰다.

안 교수는 지난 2019년 미국 저널리즘-매스커뮤니케이션학회(AEJMC) 총회에서 40세 이하 최고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크리그바움 언더 40’ 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연구 성과 뿐만 아니라 교육과 공공봉사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한국인 학자 가운데 이 상을 수상한 사람은 안 교수가 유일하다.

그는 “당시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야였지만 가상현실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해 나만의 확신이 있었다”면서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내가 개척해온 곳이 곧 길이 되는 경험을 하면서 어느새 후배 연구자들의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했다.

이상연 대표기자

회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