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손자가 왜 애틀랜타 난민도시에?

클락스턴시 ‘리젠’ 김종대 대표…난민자녀들에 교육 지원

“할아버지 ‘이웃 사랑’ 강조…3대 정치인? 계획엔 없는 일”

김홍업 전 의원 아들…”통일은 멜팅팟, 그 해답 찾아야죠”

조지아주 애틀랜타시 인근 디캡카운티에 클락스턴(Clarkston)이란 작은 도시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백인우월주의로 인해 이민자의 나라, 다인종의 멜팅팟(melting pot·용광로)이었던 미국은 사라진 것 같지만 이 곳은 그렇지 않다. 마치 영화 속 ‘동막골’처럼 잘 보존된 멜팅팟 같다.

서울 여의도의 3분의1 정도 되는 면적에 인구 7500여명이 사는 작은 도시이지만 인구의 절반 이상은 ‘재정착 난민’이다. 재정착이란 임시로 유엔 관할 난민캠프에 머물다가 난민 인정을 받고 인도적 차원에서 이민 기회를 제공하는 나라에 정착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미국은 원래 재정착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나라였고 그래서 트럼프 행정부 전까진 클라크스턴에 매년 1500여명의 난민이 정착했다. 따라서 시민들의 인종은 매우 다양하다. 2010년 기준으로 백인은 전체 인구의 13.6%밖에 안 되고, 아시아계가 16.8%, 베트남계가 4.8%이며, 58.4%는 아프리카계가 구성하고 있다.

김종대 대표와 아내 최자현씨/Facebook

지난해엔 클락스턴 시의회가 차별금지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성별, 인종, 종교, 나이, 국적, 장애여부 등에 따라 사업이나 주택구매, 취직 등에 차별을 할 수 없게 됐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리제너레이션 무브먼트(Re’Generation Movement·이하 리젠)는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 디아스포라(diaspora: 신앙·경제·정치적 이유 등으로 고향에서 타지로 이주한 자들)의 가능성을 믿고 그것을 키우기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NPO)다. 리젠을 이끄는 김종대 대표 스스로가 디아스포라의 마음을 잘 읽는 존재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이주했지만 고등학교 이후 다시 미국에서 자라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했던 그다.

김 대표는 에모리대학 경영전문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클락스턴에 머물며 봉사할 기회를 가졌다가 난민들과 함께 가는 일을 택하게 됐다. 클락스턴에 다른 비정부단체(NGO)나 봉사단체들도 많았지만 빈 곳이 보였다. 성장하는 난민 청소년들을 돕는 일을 시작해보기로 한 것. 더 많은 기회를 통해 가능성을 키워볼 수 있도록 이들의 대학 진학을 돕고 또한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고 세계 시민성을 키울 수 있는 장을 형성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통일을 염원했던 할아버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르침을 이어가려고 한다(김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전 국회의원의 아들이다).

통일이 결국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더불어 살아가는 환대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때 클라크스턴에서의 지금의 활동은 통일에 대한 해답도 알려줄 거라 믿고 있다. 아내 최자현씨는 일이나 가정에서나 모두 든든한 동업자다.

◇이민자 다중적 정체성 ‘글로벌 리더십’ 가능성에 투자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먼저 하는 일, 지난 2017년에 설립된 리제너레이션 무브먼트에 대한 설명을 해달라.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가.

▶ 우리의 미션은 ‘평화를 만들어가는 글로벌 디아스포라 양성'(empowering peacemaking global diaspora)이다. 미국에서 난민, 이민자의 정체성을 품고 살아가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단체이다. 디아스포라들은 늘 존재론적인 불편함과 불안정성을 품고 살아간다. 그 어디에도 제대로 속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도 느끼지만 뒤집어 보면 오히려 그 다중적인 정체성으로 인해 어디에도 적응하고 속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난민과 이민자, 디아스포라들이야말로 글로벌 리더십의 가능성을 무한히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그들을 객체라고 볼 때, 스스로 주체적인 의식을 갖게 하는 것, 그들 안에 있는 다중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아픔이 스스로를 더 큰 안목으로 보며 품을 수 있게 하고, 나아가 ‘세계 시민성’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리젠을 통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다.

-구체적인 활동은 어떻게 되나.

▶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교육이다. 미국에서도 사교육 시장이 크고 일부에게만 주어진다.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점수와 부모의 소득 수준은 정비례하는 통계를 보게 된다. 그러나 아무래도 미국에 재정착한 난민 가정은 교육에 대한 열정은 있어도 사교육은 부담하기 어렵고 미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도 잘 모르게 마련이다. 리젠은 난민, 이민자 출신 고등학생들에게 SAT와 대학입학학력고사(ACT) 과외, 대학입시 멘토링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동시에 가치관 교육을 위해 ‘글로벌 리더십 아카데미’를 병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세계 시민성과 인권, 평화, 다양성 등 보편적 가치에 대해 토론하고 디아스포라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세계 시민적인 관점에서 크게 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두 번째로는 대화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여러 강연과 세미나, 스터디 그룹, 미술 전시회 등을 열고 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해 한인 디아스포라 청년들이 매주 모여 스터디그룹을 진행했고, 탈북민 출신 대학생들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가 활동하고 있는 커뮤니티를 통해 난민 출신 주민들이 본인들의 스토리를 공유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으로 발달장애를 가진 아티스트들의 매니지먼트인 키뮤스튜디오와 함께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I am because we are)란 주제의 미술 전시회를 이 곳에서 열기도 했다.

세 번째는 평화 활동이다. 디아스포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조지아 주 차원에선 난민과 이민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Coalition for Refugee Service Agency’ 네트워크 일원으로 활동한다. 또 미국에서 한인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미국에서 유권자로서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라고 생각해 ‘조지아 한국 평화 캠페인'(Georgia Korea Peace Campaign)을 조직하고 ‘코리아 피스 나우!'(Korea Peace Now!)라는 풀뿌리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상원 및 하원의원 사무실들을 방문해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결의안과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설득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 망명시절 미국서 태어나…”내 소명의 시작점”

-다양한 미래를 꿈꾸었을텐데 리젠 활동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 가정 환경으로 인해 미국에서 태어났고(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이 망명해 있을 때 아버지 김홍업 전 의원도 미국에 거주했고, 김 대표는 1986년 미국에서 출생했다) 다시 한국에 들어가 중학교에 다니다 외국으로 나오게 됐다. 역시 가정 환경 영향이겠지만 자연스럽게 어려서부터 늘 내가 있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한반도 평화를 위해 힘쓸 수 있을까, 미국 땅에서 나의 소명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됐다. 그러던 중 한국과 미국이 함께 안고 있는 문제를 발견하게 됐는데 바로 차별과 혐오란 문제였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내 고향인 한국, 또다른 고향인 미국만이 갖고 있는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 문제란 걸 깨닫게 됐다. 이럴 때 클락스턴이란 곳을 알게 됐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재정착 난민으로 구성됐는데도 이런 다양성으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기보단 오히려 이 다양성으로 인해 매우 다채롭고 생기가 넘치는 곳이 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통계를 봐도 정착한 난민 인구가 늘어날 수록 범죄율은 하락했고, 조지아주 재정착 난민은 6개월 이내 91%가 완전한 자립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난민 활동과 통일은 어디에서 연계점을 찾을 수 있나

▶ 통일이란 결국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더불어 살아가는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란 생각한다면 이미 이러한 환대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는 클라크스턴에 해답이 있을 수도 있단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아내와 곧장 이 곳으로 옮겨와 봉사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러면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한 가정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들은 미국에 정착한지 3년쯤 되었는데 자녀들이 7명이나 됐고 자연스럽게 교육과 대학입시 쪽 상담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클락스턴엔 비슷한 상황에 처한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를 뒷받침 할 리소스(자원)는 턱없이 부족했다. 마침 내가 MBA를 마치는 시기였고 이 곳의 채워지지 않는 곳을 채우자는 결단을 하게 됐다. 그래서 학생들을 모아 SAT를 공부하며 가르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손주들 앞 교장 훈화하듯…인생 지혜 알려주시던 조부 ‘생생’

-할아버지가 미친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을 것 같다.

▶ 할아버지는 항상 손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많은 분이었다. 교장 선생님 훈화말씀처럼 알려주고 싶었던 삶의 지혜가 많으셨다. 그게 할아버지께서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돌아가시기 전 나눴던 깊은 대화들이 기억이 많이 난다. 한국에서 군복무를 하던 시절 휴가를 나오면 제일 먼저 할아버지를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유독 돌아가시던 해엔 저한테 해주고 싶은 말씀이 많으셨던 것 같다. 그 해 5월 말, 마침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다음 날 할아버지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왜 할아버지가 정치에 입문할 결정을 하게 됐는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마음으로 독재에 맞섰는지, 대통령으로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안의 악보다 선이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안에서 선이 이기게 하는 방법이다’란 말씀도 해주셨다. 자신의 양심을 거스르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진정 기쁜 삶이라고 강조하셨다.

8월에 전역하고 9월엔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도 할아버지는 “미국 들어가기 전에 매일매일 찾아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전역 몇달 전부터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지시더니 전역한지 1주일만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의 말씀들이 삶의 좌우명이나 미션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 할아버지의 마지막 당부와 일맥상통하는 것인데 결혼할 때 나와 아내는 반지에 마태복음 22장 37~39절 말씀을 새겼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제 삶의 북극성으로 새기고 있다. 종교인이든 세속인이든 삶의 길이 비록 완전하진 못할 지언정 결국 가리키는 방향이 이웃 사랑이라면 그 삶은 거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활동가로서의 삶을 계속할 건지, 아니면 정치에 입문할 계획도 있는 건지 궁금하다.

▶ 아무래도 집안 배경 때문에 많은 분들이 물어보시는 것 같다. 결국 이런 활동을 하다가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재로선 정치 전면에 나설 계획은 없다. 성품 자체도 정치인이 되기엔 거리가 멀고. 그리고 우선 미국에서 일을 벌여놓았기 때문에 리젠이란 단체와 프로그램이 더욱 체계화하고 안정화하도록 집중해야 할 것 같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정치란 결국 ‘유권자와 정치인 사이의 갭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인이 경영을 하다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출마해 입법 활동을 하다가 다시 본업으로 돌아와 유권자와 시민의 삶을 이어가는 식. 정치인이라는 것이 점점 더 직업화가 될 수록 실제 정치가 이루고자 하는 본질과 더 동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같다. 그리고 전문 정치인들에게 국회를 수십년 맡긴 결과 항상 국민들은 정치에 지쳐있고. 직업 정치인들이 아닌 실제 유권자들의 삶을 대변하는 이들이 많이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활동 계획이나 한국의 난민 문제에 대한 조언이나 비판을 한다면.

▶ 미국은 난민법이 제정된지도 수십년이 지났고 그만큼 제도적으로 많은 장치들이 있어 적어도 제도를 통해 난민들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난민법 제정 역사도 짧고 그 마저도 거의 보여주기식이어서 열악한 환경이다. 아시아에서 난민법이 유일하게 있는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난민 인정률은 0.4%(2019년 기준·세계 평균 30%)에 불구하고 난민에 대한 관심도 문제제기도 적고 열악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열정적인 공익법 사무소 공감이나 어필, 국제난민지원단체 피난처, 난센 등이 있고 그들의 활동이 빛난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귀한 인연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뉴스1

 

리제너레이션 무브먼트의 활동 모습(사진=김종대 대표 제공) ©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