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완공, 당시 기준에는 부합했지만…”대형 컨테이너 사건 무방비”
“미국 인프라들, 돌발 사고에 취약 보여준 사례…대비 강화 필요성 커져”
“사이버 공격 때문” “코로나 봉쇄가 원인” “이민과 연관” 등 음모론 제기
26일 새벽 볼티모어항을 출발한 싱가포르 국적의 컨테이너선 ‘달리’가 볼티모어항의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와 충돌, 20여초 만에 다리 대부분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교량 위에서는 인부 8명이 포트홀(도로 파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들 중 2명은 구조됐고 나머지는 실종 상태다.
영국 가디언과 미국 NBC 방송 등에 따르면 메릴랜드주 당국은 이 다리가 “기준을 완벽히 지켰다”고 밝혔다. 웨스 무어 메릴랜드 주지사는 이 다리가 “기준에 완전히 부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다리의 완공 시점에 주목했다. 1977년에 완공돼 47년 된 이 다리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시대 이전에 설계됐다.
충돌에 대비한 시설이 교량에 있긴 하지만, 초대형 컨테이너의 충돌을 견딜 만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영국 셰필드 대학교의 앤드루 바 토목공학 교수는 “동영상을 보면 다리의 구조적 결함은 보이지 않지만, 대형 선박과의 정면충돌에서 살아남도록 설계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 교수는 ”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에는 수년에 걸쳐 화물선의 크기와 설계가 변화하면서 더 위험해진 선박 충돌을 완화할만한 보호 인프라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부연했다.
미국 매사추세츠 애머스트대학의 산자야 아르와드 토목공학과 교수는 “다리는 선박으로부터의 충격을 견딜 수 있게 설계돼야 한다. 이는 전형적인 설계 과정”이라며 “그러나 모든 구조물과 공학 체계에는 구조물이 설계된 목적을 넘어서는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사건도 그런 상황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다리가 완공된 이후 교량 설계 기술은 개선을 이뤘다. 그 사이 컨테이너선의 용량은 최근 10년 동안에만 약 50% 증가했다.
사메 배디 미국 조지워싱턴대 토목·환경 공학과 교수는 “1970년대 이후 많은 개선이 있었다”며 “오늘 다리 붕괴 전 영상을 몇 개 봤는데 (당시 여건 기준으로는) 구조적으로 매우 안전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로베르토 레온 버지니아공대 토목·환경 공학과 교수는 엔지니어들이 설계 과정에서 ‘극단적인 사건을’를 고려하지만, “이 다리가 건설될 당시에는 이만한 규모의 선박이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레온 교수는 “이 정도의 하중은 실제로 고려되지 않았다”라며 “따라서 이 다리는, 상당히 무방비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사고로 미국 내에 있는 오래된 교량의 안전성 문제가 대두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도로 교통 건축협회(ARTBA)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4만3천개 이상의 교량이 상태가 좋지 않고 ‘구조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으로 분류된다.
인프라 정책 전문가인 리처드 개디스 미국 코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재난은 미국의 인프라가 의도적인 파괴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사고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를 보여준다”며 “선박과 교량 충돌에 대비한 보호 강화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고 이후 온라인에는 근거 없는 음모론이 퍼지는 실정이다.
온라인에는 다리에 충돌한 선박이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거나 코로나19 국면 당시의 봉쇄가 이번 사고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온라인뿐 아니라 유명인들도 음모론에 가세했다.
폭스뉴스 간판앵커인 마리아 바티로모는 이번 충돌 사고가 “넓게 열린 국경”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며 이민과의 연관성을 제기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플린도 엑스(X·옛 트위터)에서 이번 충돌이 사고가 아니라는 식의 주장을 내놨다.
미국보수연합(ACU)의 맷 슐랩 의장은 코로나19 당시 봉쇄로 인해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의 인프라와 교통 서비스가 약화됐으며, 이 사고의 배경에 마약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