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가요계는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7인 전원이 병역 의무 이행에 돌입한 가운데 방탄소년단 솔로 활동과 후배 그룹의 활약으로 K팝이 미국에서 저변을 넓혔다.
뉴진스와 아이브를 필두로 한 걸그룹 열풍이 가요계를 강타했고, ‘중소돌의 기적’으로 불린 피프티 피프티는 전속 계약 분쟁으로 파장을 낳았다.
K팝 음반 수출액, 특히 대미(對美) 성적이 ‘날개’를 달았음에도 심상찮은 중국 시장 때문에 일각에서는 ‘K팝 위기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 BTS 전원 입대…그래도 K팝 빌보드 1위 또 1위
K팝 인기를 견인한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12월 맏형 진을 시작으로 올해 4월 제이홉, 9월 슈가, 이달 RM·뷔·지민·정국까지 일곱 멤버 전원이 병역 의무를 이행하게 됐다.
이들은 비슷한 시기 멤버들이 입대를 결정하면서 공백기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오는 2025년으로 예정된 팀 활동 재개에 성큼 다가섰다. 2013년 데뷔 이래 올해로 활동 10주년을 맞은 방탄소년단은 두 번째 재계약도 체결하며 팀 활동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방탄소년단은 팀 활동이 없었음에도 올해 K팝은 전 세계, 특히 미국 시장에서 ‘훨훨’ 날았다.
방탄소년단 지민과 정국은 솔로곡 ‘라이크 크레이지'(Like Crazy)와 ‘세븐'(Seven)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위에 올랐다.
또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스트레이 키즈, 뉴진스 같은 후배 그룹들은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1위를 거머쥐었다.
피프티 피프티의 ‘큐피드'(Cupid)는 입소문을 타고 꾸준한 인기를 누려 빌보드 연간 싱글 결산 차트 ‘핫 100 송’ 44위를 기록했다. 방탄소년단 정국의 ‘세븐’은 82위에 올라 K팝 솔로 가수로는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후 11년 만에 이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K팝 스타들의 성공은 K팝 음원·음반 시장의 확대로 이어졌다.
미국 음악 시장 분석 업체 루미네이트에 따르면 10월 현재 상위 100개 K팝 가수(팀)들의 올해 누적 주문형(On-Demand) 오디오·비디오 스트리밍은 904억건으로 작년 동기 대비 42.2% 증가했다.
또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10월 음반 수출액은 2억4381만4000달러(약 3209억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3% 증가해 이미 연간 기준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대미 수출액이 작년 동기 대비 67.3% 증가하는 등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 걸그룹 열풍 거셌다…피프티 사태에 ‘탬퍼링’ 논란도
올해 K팝 내수 시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걸그룹 열풍이 거셌다.
1월부터 뉴진스의 싱글 ‘OMG’가 큰 성공을 거두며 수록된 ‘디토'(Ditto)가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 ‘톱 100’ 차트에서 역대 최장기간 1위를 차지했다. 뉴진스는 이에 힘입어 ‘마마 어워즈’·’MMA 2023′(멜론뮤직어워드) 같은 국내 주요 음악 시상식에서 대상을 쓸어 담았다.
이 밖에 아이브·에스파·르세라핌 등 이른바 ‘4세대 걸그룹’들이 바통을 이어가며 꾸준히 활약했고, 각자 첫 단독 콘서트를 성황리에 치러냈다.
그룹 세븐틴은 열한 번째 미니음반 ‘세븐틴스 헤븐'(SEVENTEENTH HEAVEN)으로 가요계 최초로 한터차트 기준 발매 첫 주 판매량 500만장 고지에 올라섰다.
한편 ‘큐피드’의 글로벌 히트로 ‘중소돌의 기적’으로 불린 피프티 피프티는 소속사 어트랙트와 전속 계약 분쟁을 겪으며 가요계에 충격을 안겼다.
피프티 피프티 네 멤버는 어트랙트를 상대로 정산 문제 등을 거론하며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프티 피프티가 데뷔 반년 만에 분쟁을 일으키자 여론은 싸늘하게 돌아섰고, 멤버 키나만 소속사로 복귀해 홀로 ‘빌보드 뮤직 어워즈'(BBMA) 같은 굵직한 행사에 참석했다.
가요계에서는 이 사태로 ‘탬퍼링'(Tampering·전속계약 기간 중 사전 접촉) 문제가 공론화됐다.
◇ 가요계 뒤흔든 SM 인수전…K팝 위기론도 주목
올해 2∼3월 국내 간판 가요 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인수전은 가요계와 팬들의 단연 핫이슈였다.
SM 설립자인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물러나고, SM 경영진이 ‘IT 공룡’ 카카오와 손을 잡는 과정에서 촉발된 갈등이 경영권 분쟁으로 비화한 것이다.
이수만이 자신의 지분 대부분을 경쟁 기획사 하이브에 매각하자, ‘하이브·이수만’ 대 ‘SM·카카오’의 지분 확보 경쟁이 펼쳐졌다.
하이브와 카카오는 SM 지분 공개 매수 경쟁까지 펼쳤다. 하이브가 ‘SM 가수들의 위버스 입점’을 받아내는 조건으로 카카오와 합의하면서 SM은 결국 카카오의 품에 안겼다.
그러나 인수전 당시 경쟁사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카카오가 SM 주식 시세를 조종했다는 의혹을 두고 금융감독원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면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구속기소 되고 김범수 카카오 전 이사회 의장이 검찰에 송치되는 등 사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편, 가요계에서는 올해 호황과는 정반대로 K팝 위기론도 잇따라 제기됐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최근 주요 시장에서의 지표 하락이 보이는 게 있다. 제가 이야기하는 근간은 ‘굉장히 강렬한 팬덤의 소비'”라며 “K팝 팬은 강렬한 몰입도와 집중적인 소비를 보이는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는 확장성의 한계가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해외 주요 시장인 중국 대상 K팝 음반 수출액이 올해 1∼10월 전년 대비 51.1% 감소하고, 미국 대중음악 시상식인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신설된 K팝 부문 외에는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점은 이러한 우려에 불을 지폈다.
하이브, SM, JYP 등 가요계 주요 대형 기획사들은 이러한 ‘확장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해 영미권 대형 음반사 혹은 제작사와 손잡고 현지화된 합작 그룹 제작에 나섰다. 하이브와 JYP는 대규모 오디션을 거쳐 한국인이 1명뿐인 걸그룹 캣츠아이와 전원 외국인으로 구성된 걸그룹 비춰(VCHA)를 각각 선보였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방탄소년단의 공백이 있었지만, 많은 기획사에서 수익 다변화를 위해 노력한 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는 “K팝이 글로벌 시장에서 영미권 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퀄리티를 확보하면서 ‘보편적인 대중음악’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한 해였다”며 “동시에 ‘K가 없는 K팝 그룹’의 가능성이 보이가 시작하면서 앞으로 K팝의 정체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남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