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록의 전설’ 데이비드 크로스비 81세로 별세

60∼70년대 ‘우드스톡 세대’ CSNY, 더 버즈의 가수·작곡가

‘턴턴턴’, ‘데자뷔’ 등 히트…”인권·평화는 옳았지만 마약이 괴롭혀”

‘천국’ 관련 “나는 이 장소가 과대평가됐다고 들었다” 트윗글 하루만에 ‘천국행’

2009년 크로스비의 모습 [AP=연합뉴스 자료사진]

2009년 크로스비의 모습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 포크록의 ‘산 증인’으로 불린 싱어송라이터 데이비드 크로스비가 19일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와 CNN 방송,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고인의 부인 잰 댄스는 “우리가 사랑하는 데이비드 크로스비가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 매우 슬프다”고 밝혔다.

1941년 8월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크로스비는 크로스비 스틸스 앤 내시(CSN), 더 버즈 등 그룹에서 활동하며 1960∼1970년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포크 가수다.

그는 1991년 더 버즈로, 1997년 CSN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두 차례 헌액됐다.

더 버즈의 1965년 곡 ‘턴! 턴! 턴!'(Turn! Turn! Turn!)은 1994년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삽입돼 다시 인기를 얻었으며, 더 버즈 시절 다시 부른 밥 딜런 원곡의 ‘미스터 탬버린 맨’도 주목받았다.

CSN에 닐 영이 합류해 결성된 크로스비 스틸스 내시 앤 영(CSNY)의 음반 ‘데자뷔'(Deja Vu)는 ‘데자뷔’ 외에도 ‘우드스톡'(Woodstock), ‘올모스트 컷 마이 헤어'(Almost Cut My Hair) 등 히트곡을 냈다.

크로스비가 공동 작곡한 더 버즈의 ‘에이트 마일스 하이'(Eight Miles High)도 인기를 끌었다.

CSNY는 히피 문화의 정점이자 록 페스티벌의 시초로 꼽히는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의 계보를 잇는 ‘우드스톡 세대’ 중에서도 더 부드러운 측면의 음악을 선보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CSNY와 더 버즈는 록과 포크를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해 히피 시대 음악의 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크로스비는 복잡미묘한 보컬 하모니, 기타의 개방현을 조율하는 비전통적 방식인 오픈 튜닝, 날카로운 작곡 등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캐럴 킹, 조니 미첼 등 다른 전설적 가수들과도 협업했다.

왼쪽부터 스틸스, 내시, 크로스비, 닐 영. 2000년 무대에 오른 모습. [AP=연합뉴스]

왼쪽부터 스틸스, 내시, 크로스비, 닐 영. 2000년 무대에 오른 모습. [AP=연합뉴스]

사생활 측면에서 많은 부침을 겪은 점도 잘 알려져 있다.

대형 오토바이 사고를 겪는가 하면 여자친구의 죽음으로 마약중독이 더 심해졌다. 약물 남용은 결국 간이식 수술로 이어졌다. 그는 C형간염, 당뇨병도 앓았고 심장수술을 받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건강상 문제를 안고 있었다.

2014년 대중문화 전문지 롤링스톤은 그를 “가장 예상 밖의 생존자”라고 불렀으며, 그 자신도 2019년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인간이 갈 수 있는 가장 밑바닥까지 갔다”고 털어놓았다.

크로스비는 2006년 타임과 한 인터뷰에서도 미국 히피 문화가 유행한 1960년대를 되돌아보며 “시민권과 인권, 전쟁보다 나은 평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옳았다”라며 “하지만 우리는 마약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고 그것이 우리를 꽤 괴롭혔다”고 말했다.

마약 남용과 거친 성격으로 인해 함께 활동한 멤버들과 불화도 겪었다.

CSNY에서 함께 활동했지만 최근 몇 년간 소원했던 그레이엄 내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내 친구 데이비드 크로스비가 별세했다는 소식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내시는 “사람들은 가끔은 변덕스러웠던 우리 관계를 조명하곤 하지만, 데이비드와 나에게는 함께 만들어낸 음악의 순수한 기쁨, 서로에게서 발견한 소리, 오랜 세월 나눈 깊은 우정이 언제나 가장 중요했다”고 추모했다.

비치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도 소셜미디어에 “가슴이 아프다”라며 “데이비드는 놀라운 재능인이었고 위대한 가수·작곡가였으며 놀라운 사람이었다”라고 추모했다.

데이비드 크로스비
데이비드 크로스비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크로스비는 세상을 떠나기 불과 하루 전인 18일까지도 트위터 계정에 유머 섞인 글을 자주 쓰는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왕성하게 대중과 소통해 왔기 때문에 그의 갑작스러운 부고는 팬들에게 더욱 놀라움을 안겼다고 버라이어티는 전했다.

그가 이날 올린 트윗 중에는 ‘천국’을 가리켜 “나는 이 장소가 과대평가됐다고 들었다”는 글도 있었다. ‘문신이 있으면 천국에 갈 수 있나’라고 구글에 검색한 결과를 캡처한 다른 사람의 게시물을 리트윗하면서 덧붙인 코멘트다.

크로스비는 6명의 자녀를 뒀다. 그중 한 명은 미국 여성 록가수 멀리사 에더리지의 여성 파트너가 크로스비의 정자를 기증받아 낳았고, 또 다른 한 명도 정자기증으로 태어났다.

크로스비의 아버지는 1952년 영화 ‘하이눈’으로 골든글로브상을 받은 촬영감독 플로이드 크로스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