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6·25 71주년과 한미동맹

▶손우현 한불협회 회장

.
지난 6일 제66회 현충일 추념식 생중계를 지켜보다가 예년에 볼 수 없던 광경에 내 눈을 의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워싱턴에서 ‘미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착공식에 참석한 영상과 함께 미군 공수부대원으로서 6·25전쟁에 참전해 오른팔과 오른다리를 잃은 윌리엄 빌 웨버(96) 예비역 대령이 보내온 영상 메시지가 방영되는 것이었다.

이어서 카투사 하사로 6·25에 참전했던 김재세(94) 옹이 연단에 올라 답사를 낭독했다. 전례 없이 서울현충원-대전현충원-유엔기념공원(부산)을 3원으로 연결하여 진행된 이날 행사는 6·25전쟁이 국제전이었음을 상기시켜주었다.37개월의 전쟁 끝에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이 전쟁은 무승부로 끝난다. 그러나 냉전이 서방의 승리로 끝난 오늘날 남북한의 국제적 위상을 비교해 볼 때 누가 승자인지는 자명해진다. 지난해 북한의 국내총생산은 한국의 5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무엇이 이런 남북한의 격차를 가져왔는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미동맹이다. 이 동맹의 기초가 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Republic of Korea)은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서명되었는데 ‘미국의 주도가 아니라, 한국의 요구로 우여곡절 끝에 체결된 것이다.’ (남시욱 저 ‘한미동맹의 탄생비화’)

최근에는 ‘미국이 내부적으로 한국과의 동맹을 이미 결정해 놓고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를 희석시키기 위해 그에게 베푼 양보인 것처럼 보이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되고 있다(한승주 저 ‘한국에 외교는 있는가’). 그러나 어떤 경우든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과 탁월한 외교력이 이 조약 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우리의 모든 생명과 희망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달려 있다”고 조약 교섭을 위해 방한한 덜레스 미 국무장관에게 말했다.

1953년 8월 8일 이 조약 최종안이 서울에서 가조인되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성립됨으로써 우리는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조약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번영을 누릴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이번 공동조치는 외부 침략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함으로써 우리의 안보를 확보해 줄 것이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은 남북한의 운명을 갈라놓은 역사적 사건이다. 한미동맹은 이승만의 예언대로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과 자유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은 불과 수십 년 만에 원조 대상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탈바꿈하였으며 세계 경제 10위권의 국가가 되었다. 서양 선진국들이 1세기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를 한국은 불과 반세기 만에 이룩한 것이다.

지난 50년간 세계경제가 7배 정도 성장했는데 우리 경제는 400배 성장했다. 동시에 한국은 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민주국가가 되었다. 이는 대한민국의 안보를 담보해 준 한미동맹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 원로 보수 논객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이 ‘뜻밖의 한미 동맹 확인서’라고 논평했다. 1만7000여 자(2,632 영어 단어)에 달하는 장문의 공동성명은 ‘대만’ ‘쿼드’ ‘남중국해’ 등 중국이 예민해하는 사안을 담았다. 또 같은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며 5G 및 6G 기술과 반도체를 포함한 제반 첨단 기술 분야에서 협력하는 포괄적 전략 동맹의 현주소와 미래 청사진을 상세히 보여주었다.

나는 이를 40여 년 전 외무부 출입기자로 취재하던 양국 간의 빈약했던 공동성명과 비교하면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미 양국의 지속적인 우정은 양국 간 활발한 인적 교류가 잘 보여주고 있다. 공동성명에 의하면 1955년 이후 170만 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미국에 유학했다. 또 200만 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미국을 방문하거나 미국에 근무 또는 거주하고 있고, 20만 명 이상의 미국 시민들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 지도자, 언론인 등을 포함하여 1만 명 이상의 한미 양국 각계 인사들이 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해왔다.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 이후 처음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이 재설정(reset)되고 강화된 것은 매우 반가운 현상이다.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던 6·25전쟁 71주년을 맞는 감회가 더욱 특별한 이유다.

<(현)한불협회 회장,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객원교수, 미디어SR 논설위원/서울평화상 문화재단 사무총장, 대통령해외 홍보비서관, 주불공사 겸 파리문화원장 역임/저서:”프랑스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