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천만] ⑦미국 방역실패 왜…향후 세상은

‘제2 유행’ 막으려면 위생 철저해야…경제활동 병행이 딜레마

‘포스트 코로나’ 봉쇄·해제의 반복…낯선 사람·모임 피할 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1000만명 시대를 맞아 미국과 브라질, 인도는 방역에 실패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저마다 특징이 있지만, 국토가 넓고 인구가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다른 공통분모로는 국가 지도자가 코로나19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거나 경제 활동 재개를 위해 성급하게 봉쇄 조치를 풀었다는 점이 꼽힌다.

또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는 ‘포스트 코로나19’ 세상은 봉쇄와 해제의 반복이 될 수 있으며 지금 팬데믹을 겪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에는 새로운 풍속도가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비치의 한 식당 앞에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바짝 붙어선 채 줄 서 있다. [AFP=연합뉴스]
◇ 초기 대처 실패에 리더십 부재…미국을 수렁으로

미국은 환자 수와 사망자 수에서 단연 세계 1위에 올라서 있다. 미 존스홉킨스대학은 26일(현지시간) 기준 미국의 확진자 수를 약 246만명, 사망자 수를 약 12만5천명으로 집계했다.

미국의 방역 실패의 원인은 사태 초기의 실기와 리더십의 부재로 요약된다.

미국에서는 1월 22일 첫 환자가 나왔고, 한동안 더딘 증가세를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7일 미국에 환자가 15명밖에 없다면서 “그 15명도 하루이틀 뒤면 제로(0)에 가깝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착시였다. 컬럼비아대학은 미국이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를 1주일만 더 먼저 시작했다면 5월 초까지 뉴욕시 일대에서만 2만2천명 이상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미국 전체적으로는 약 3만6천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으로 집계했다.

미국의 시련은 계속되고 있다. 5월부터 6월 중순까지만 해도 일일 신규 환자가 1만명대 선으로 내려가는 등 진정 양상을 보이다 지난 25일에는 4만명 가깝게 치솟으며 다시 불길이 번지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섣불리 경제 재개에 나선 점을 원인으로 꼽는다. 그 뒤에는 ‘위기를 넘겼다’며 빨리 경제를 재가동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독촉도 한몫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서 단 한 차례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며 마스크 착용을 정치 이슈로 둔갑시키는 데 앞장섰다.

많은 미국인은 여전히 정치적 신념에 따라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고, 많은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은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꺼리고 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유명 쇼핑가 앞을 지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 ‘가벼운 독감’이라는 대통령의 인식…브라질 세계 2위 감염

브라질은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환자·사망자가 많이 나왔다. 존스홉킨스대의 26일 통계에 따르면 확진자가 약 127만명, 사망자가 약 5만6천명이다.

브라질 역시 초기 대응에 실패한 국가 중 하나로 지목된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사태 초기에 코로나19를 ‘가벼운 독감’으로 표현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세계보건기구(WHO)와 언쟁까지 벌이며 국제사회와 다른 길을 갔다.

연방정부가 진행 상황을 관찰하고 대응전략을 수립한다며 3월에 설치한 ‘코로나19 위기 관리위원회’는 의사나 보건 전문가가 아닌 군 장교들로 채워졌다.

그러는 사이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대응 방식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보건장관 2명이 한 달 간격으로 사임하면서 ‘컨트롤타워 부재’를 자초했고, 지방정부가 대응을 주도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코로나19가 갈 데까지 간 뒤 환자 수가 자연 감소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냐”는 비난이 제기됐다.

대통령의 막무가내 행보와 보건수장 공백은 대응을 더디게 만들었다. 보건부는 사태 4개월이 지나서야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5천만명을 대상으로 검사를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를 못 견딘 지방정부들은 이달 초 사회적 격리를 속속 완화했으며, “끔찍한 실수가 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현실화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도 첸나이에서 의료진이 한 노인을 상대로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경제 압박에 봉쇄령 푼 뒤 확진자 급증하는 인도

’87명(3월)→1990명(4월)→6535명(5월)→1만7296명(6월)→?’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인도의 하루 확진자 수 증가 추세다.

한때 코로나19 방역 성공 사례로 거론됐던 인도가 이제는 세계가 걱정하는 ‘핫스폿'(집중발병지역)이 됐다.

인도의 코로나19 환자 수는 약 49만명, 사망자 수는 약 1만5천명이다. 각각 세계 4위, 8위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도가 미국과 함께 환자 수로 선두를 다툴 날이 머지않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인도는 3월 25일부터 두 달가량 전국에 봉쇄령을 내리는 등 강력한 조처를 내렸음에도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이주 노동자의 대규모 귀향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간지 인디아투데이는 지적했다.

갑자기 봉쇄령이 내려지자 대도시의 이주 노동자 수천만 명은 일자리를 잃었고 이들 중 상당수는 봉쇄령을 뚫고 고향으로 향했다.

슬럼가로 대표되는 인도의 밀집 주거 환경도 바이러스 확산에 악영향을 미쳤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저소득층은 제대로 된 마스크도 없이 감염에 노출됐다.

이런 와중에 봉쇄 조치로 경제에 치명상이 생기자 인도 정부는 지난달 중순부터 단계적으로 각종 통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자 확산세는 고삐 풀린 듯 가팔라졌다. 이달 1일부터 26일까지 하루 신규 확진자 수 기록이 경신된 날은 무려 19일이나 됐다.

아르빈드 케지리왈 델리 주총리는 확산 우려에도 뉴델리의 봉쇄 해제를 강행하면서 “우리는 이제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덴마크의 한 학교에서 야외 음악수업을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자료사진]
◇ ‘포스트 코로나’ 세상은…백신 없으면 봉쇄·해제 반복될 듯

‘포스트 코로나19’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미 겪어본 경험들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규모 집회나 스포츠 경기 관람, 결혼식, 입학·졸업식, 콘서트 등은 열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여행도 엄격하게 통제된 방식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물론 확산을 잡았다고 판단하는 지역에서 국지적으로, 또는 정치·경제적 압력에 의해 일시적으로 봉쇄령이 풀릴 수는 있다. 그러나 세계 어느 곳에든 코로나바이러스가 남아 있는 한 언제든 다시 봉쇄령이 내려질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NYT는 지적했다.

이제 감염 책임은 개인 몫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사람들은 어떤 행동까지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지 매일매일 결정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NYT는 전했다.

일부에서는 장기간 계속된 급격한 변화는 결국 사람을 변화시킨다며 코로나19가 통제 상태에 들어간 이후 낯선 사람이나 큰 모임을 피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은 수년간 사람들 마음속에서 메아리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봉쇄령을 푼 덴마크의 사례를 들어 얼핏 보면 과거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달라진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고 미국 시사잡지 디애틀랜틱은 전했다.

학교로 돌아간 아이들은 서로 어울려 놀거나 포옹하고 하이파이브를 할 수 없고, 서로 떨어진 채 매시간 손을 씻으며 수업을 듣게 된다는 것이다.

USA투데이는 경제 대공황이 미국을 검소한 절약가들의 나라로 만들고, 제2차 세계대전이 낙관적 소비 지상주의의 국가로 만들었듯, 지금 팬데믹을 겪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새로운 미국을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