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바꾼 삶…파일럿이 트럭운전사됐다

WSJ, 팬데믹 직격탄 맞은 글로벌 항공업계 변화 소개

하늘을 나는 멋진 직업으로 각광받았던 항공기 조종사들이 트럭 운전수나 중장비 기사로 생업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평생 또는 최소 수년간 갈고 닦았던 비행 기술과 전혀 관계 없는 일을 밥벌이를 위해 찾아나서고 있다.

◇ 경력자에서 조종사 준비생까지 타격

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세계 항공업계에서 경력이 거의 없는 젊은 조종사들은 해고, 나이가 많은 이들은 조기 퇴직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항공 조종사 준비생들까지도 타격을 입고 있다. 영국 항공조종사협회는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조종사 예비후보생들에게 비행학교 입학을 연기하라고 권고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호주 콴타스 항공에서 25년간 근무했지만 해고당한 한 전직 조종사는 일주일에 70시간 일하며 투잡을 뛰고 있다. 하나는 식료품점 일이고, 다른 하나는 건설현장에서 교통을 관리하는 일이다.

제네바에 본부를 둔 항공운송활동그룹(ATAG)은 이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약 480만 명의 항공 관련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항공사만 130만 명의 일자리가 줄어들 전망이다. 이중 조종사들의 비중이 얼마가 될 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의 한 노조는 유럽에서만 1만7000명 이상의 조종사들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보고했다.

다른 산업은 이를 기회로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해직 조종사들을 인력으로 쓰려고 애쓰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 그린베이에 본사를 둔 트럭 운송 회사인 슈나이더 내셔널은 최근 페이스북에서 전직 조종사들을 대상으로 “어떤 차량을 조종하든, 당신은 ‘이 배의 선장’입니다”라며 모집 광고를 냈다. 또 호주에서는 항공기 조종사들이 농작물을 수확하는 중장비 기사로 일하고 있다.

◇ 해고 피해도 ‘울며 겨자먹기’로 저임금 받아들여

일부 항공사들은 조종사 인원 감축을 연기했지만 대신 근무시간과 임금을 줄였다. 조종사 양성에 수년이 걸리는 특수 직종이라 전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던 항공기 조종사 노조는 협상력을 잃었다. 일부 단위 노조들은 현재는 어쩔 수 없더라도 코로나19가 끝난 후에도 임금이 다시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항공업 회복도 수년이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20개국 290개 항공사를 대표하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2019년 수준의 수요회복이 되려면 빨라야 4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항공업계의 고민은 또 발생한다. 조종사를 양성하는 데 5년이 걸리는데 2025년께 이 산업이 완전히 회복된다면 미래의 조종사들은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는 문제다.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조종사 감원이 없기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지난주 1200명 조종사들에게 무급휴직이 일어날 수 있다고 통지했다. 노조는 “이건 협상이 아니라 머리에 총을 겨눈 것”이라며 반발했지만 사우스웨스트 측은 모든 일자리를 보존하는 것이 목표지만, 과도한 인건비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비용절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홍콩의 캐세이퍼시픽은 임금을 대폭 깎은 새로운 임금계약안을 조종사들에게 제시했다. 노조측은 “최대 58%까지 임금이 감축됐다”면서 “항공 운송 시장이 반등할 때 조종사들이 이전 급여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계약서에 없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사측은 전체 대상자 중 98.5%에 해당하는 2600여 명의 조종사가 새 계약에 동의했다고 밝혔다고 WSJ는 전했다.

여객기 기내를 소독하는 델타항공 직원 [AFP=연합뉴스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