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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당신 기사 때문에 큰일 나면 어쩌려고…”

피해자 외면하는 ‘가짜 평화’, 진실 조작하는 ‘가짜 언론’은 공동체의 위협

최근 본보가 일부 한인 단체장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연이어 게재하자 “평화로운 한인사회에 괜한 소란을 일으킨다”거나 “비판받은 사람이 큰일이라도 내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특히 홍승원 전 동남부한인회연합회장의 카드 도용 의혹 기사에 대해서는 “큰 금액도 아닌데 덮어두면 될 일이지, 괜히 일 키운다”는 항의까지 간접적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런 비난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2차 가해이자,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공익보다 개인의 체면을 우선시하는 반(反) 공공적 인식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기자가 2년 전 애틀랜타한인회의 공금 유용 문제를 보도했을 때도 비슷한 악담이 쏟아졌다. “그 사람이 잘못된 선택이라도 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는 협박성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

언론의 본질은 공익을 지키는 일이다. 기자는 보도를 통해 권력을 감시하고 공동체의 신뢰를 바로 세워야 한다. 겉으로는 냉정하게 보일지 몰라도, 30년 넘게 기자로 일하면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은 ‘이 기사가 당사자에게 남길 상처의 크기’다.

특히 작은 커뮤니티일수록 인연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한 건의 비판기사에도 더 큰 용기와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기자는 늘 마음속에 ‘가상의 저울’을 놓고 판단한다. 이 보도가 감정적 비난이 아닌 공익적 필요에 기반한 것인지, 그리고 보도를 통해 또 다른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지를 따진다.

그만큼 사전 취재는 철저해야 한다. 홍승원 전 회장 사건 역시 제보를 받은 후 두 달간 피해자 확인과 교차 검증을 거쳤고, 홍 전 회장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카드 대금을 갚을 테니 시간을 달라”는 요청에 기사 게재도 미뤘다.

김형률 전 민주평통 애틀랜타협의회장 관련 보도도 같은 원칙에 따라 진행됐다. 지난 8월 제기된 민주평통 미주 부의장직을 위한 로비 자금 사용 의혹 제보를 토대로 두 달 가까이 여러 경로의 인터뷰를 거쳤고, 한국 정부 관계자들에게까지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자리’를 둘러싼 지역 인사 간 갈등과 내분이 한인사회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그러나 이후 기자라는 명함을 가진 한 인물이 해당 기사의 선후 관계를 왜곡해 ‘김형률 흠집내기’로 몰아가며 사실상 김 전 회장의 방패막이를 자처했다. 기자는 해당 인물에게 반론을 요청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고, 대신 온라인을 이용해 본보를 공격하는 글이 여과없이 쏟아졌다.

심지어 그는 김 전 회장이 본보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가짜 기자회견’까지 기획했지만, 결국 김 전 회장 본인이 이를 부인하며 해프닝으로 끝났다.

김 전 회장은 기자와 만나 “미주 부의장 후보에 오른 것은 맞지만 로비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소송 등을 통해) 언론의 역할을 방해할 생각은 결코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기자회견도 내 뜻이 아니었고, 앞으로는 언론과 직접 소통하겠다”며 잘못된 일 처리에 대해 유감의 뜻을 전해왔다.

언론의 자유는 권리가 아니라 책임의 무게다. 기자는 비판의 펜을 들되, 그 펜끝이 반드시 사실 위에 서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반대로, 특정 인물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미운 털’이 박힌 대상을 공격하기 위해, 사실 확인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기사의 외피를 쓴 조작된 글’을 내보내는 행위는 보도가 아니라 폭력적인 배설일 뿐이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은 기자가 아니다. 반론을 들을 용기도 없는 자가 어떻게 취재를 하고, 감히 보도를 한다는 말인가.

더구나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소송을 부추기고 가짜 기자회견을 기획한 것은 용서받기 어려운 행동이다. 이는 언론의 탈을 쓴 비겁한 범죄이자, 자신이 몸담은 조직의 신뢰를 파괴하는 자해행위다.

비판은 공동체를 바로 세우지만, 왜곡과 조작은 공동체를 병들게 한다. 그런 언론은 진실을 파괴하는 가짜 권력의 공범일 뿐이다.

이상연 기자
취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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