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역사칼럼] 34. Manifest Destiny

신념과 미신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신념과 미신은 둘 다 강한 믿음이 있다는 의미에서는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사전에서 미신의 정의를 찾아보면, “보편성을 지니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헛되고 올바르지 못한 믿음”이라고 쓰여 있다. 무엇이 헛되고, 무엇이 올바르지 못한지를 판단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보편적으로 사회에 이득이 되면 신념이고, 해악을 끼치는 결과를 낳는 것은 미신이 아닐까 싶다. 미국이 독립한 초창기에 미국 사회에 Manifest Destiny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진 적이 있다. ‘명백한 운명’이라고도 하고 ‘천명’이라고도 번역한다.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는 쯤으로 표현되어 다소 비장한 뜻을 품고 있다. 그런데 그 역사적 사명이 좀 공격적이라서 문제라고 하겠다.

미국이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시절 프랑스로부터 미국 중부 지방을 사들여 영토를 두 배로 늘린 이후에 미국인들은 서부로 진출해서 계속 영토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출발한 것이 Manifest Destiny라는 믿음이다. 즉 미국은 계속 서부로 진출해야 할 운명을 신으로부터 받았다는 믿음이다.

이런 믿음이 1800년대 초반부터 이미 형성되어 있었지만, 정작 ‘Manifest Destiny’라는 말을 처음 공식적으로 신문 지상에 썼던 사람은 존 오설리번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1845년 뉴욕의 모 신문에 “서부로 진출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이다.”라고 밝혔다. 이런 주장에 대해 당시 대통령이던 제임스 포크가 미국의 영토를 넓혀야 위대한 미국을 만들 수 있다고 말을 보탰다. 그러자 대다수 미국 사람이 서부로 진출하는 것이 신이 주신 ‘명백한 운명’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명백한 운명’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이 서부 개척 활동을 전개한 시기를 바로 ‘서부개척 시대’라고 부른다. 우리는 서부개척 시대를 무대로 하는 영화에 출연한 수많은 배우에 매료된 적이 있다. 대표적인 존 웨인을 위시해서,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 율 브리너, 커크 더글러스, 버트 랭커스터 등 수없이 많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탈리아에서 서부극을 찍어 소위 말하는 마카로니(혹은 스파게티) 웨스턴을 통해 이름을 날리기도 했었다.

남성 다운 멋을 풍기는 서부극을 보면서 서부 개척이 ‘인디언 말살’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이 우리 중 몇 명이나 될까? 서부개척 시대에 가장 피해를 본 것이 멕시코와 서부에 쫓겨 가 있던 인디언들, 그리고 수많은 들소(Bison)들이다. 멕시코는 미국의 서부 진출로 인해 영토의 절반가량을 잃게 되고, 인디언과 들소들은 가을바람에 낙엽 지듯 스러져 갔다. 영국도 다소 손해를 보았다. 지금의 워싱턴 주와 오리건 주를 차지하고 있던 영국도 끈질긴 미국의 진출에 이 지역을 미국에 내주고 말았다.

이후에도 미국은 북아메리카 대륙의 서부를 차지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영토를 넓힌 결과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차지하고, 다시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등을 식민지로 갖게 된다. 심지어 한반도에도 진출을 시도하였는데, 1871년에 ‘신미양요’라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뻗어 나간 결과 미국은 현재 초강대국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다만, Manifest Destiny라는 신념을 갖고 나약한 남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 마음에 걸린다. Manifest Destiny가 미국인에게는 신념이었는데, 멕시코인에게는 미신이었다고 말해야 하나? 멕시코는 피해를 당했으니 말이다. 하기야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힘이 강성하여 남의 영토에 진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힘이 약해 남에게 먹히는 것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우리는 그렇게 넓혀진 미국땅에 살면서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 어쩌랴.

(최선호 보험제공 770-234-4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