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으로 태어나 은혜받고 빈손으로 갑니다”

[이상연의 짧은 생각] ‘기부천사’ 한인 별세…남겨놓은 카톡 메시지 ‘먹먹’

어제(26일) 황망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애틀랜타 한인사회에서 ‘숨은 기부천사’로 불리던 한인 인사가 별세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게다가 요즘같은 100세 시대에는 한창 나이인 65세에 갑자기 찾아온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3개월 만에 숨을 거뒀다고 하니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사업과 은행 투자 등을 통해 부를 이룬 고인은 일찍부터 자선 재단을 설립해 한인 차세대를 위해 매년 장학금을 전달했습니다. 또한 독실한 크리스천인 고인은 수많은 선교 활동에 아낌없이 기부하는 한편 직접 선교 현장을 찾아 봉사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지난해에도 남미 지역으로 선교를 떠난다며 “기회가 되면 같이 가자”고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난 2020년 4월 고인은 필자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생계가 어려워진 한인들을 돕기 위해 기금을 낼테니 지면을 통해 홍보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3만달러를 지원하는 대신 본인의 이름은 감춰달라는 부탁도 했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20명을 선정해 1500달러 씩 지원하려는 당초 계획은 23명으로 확대됐고 고인은 3만4500달러의 수표를 내놓았습니다. 지원자들의 사연을 받아 보니 사정이 딱한 사람이 많아 내려진 결정이었습니다. 당시 도움을 받은 장애 딸을 키우는 싱글맘과 체류신분 미비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가장 등은 본보에 애틋한 감사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고인의 기부와 봉사는 이어졌고 가끔 필자에게도 전화를 해 “혹시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마다 기부 조건은 본인의 이름을 감춰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고인은 직접 운영하던 자선재단에도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황망한 소식을 들은 뒤 고인의 카카오톡 메신저를 찾아봤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써놓은 듯한 메시지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나 은혜를 받고 빈손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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