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문건서 유엔 사무총장 도청 정황 추가 확인”

WP “구테흐스 총장, 에티오피아 분쟁지역 방문 거절에 ‘격노'”

“3월 우크라 방문시 예고없는 메달 수여 행사 ‘우릴 팔아먹어'”

‘기밀 유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미국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사적 대화를 도청한 것으로 보이는 추가 문건이 공개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17일 구테흐스 사무총장과 유엔 고위 간부 간 대화가 담긴 기밀문건 4건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특히 문건의 내용은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그의 보좌관들과 사적으로 나눈 대화들로, 미국이 해외정보감시법(FISA)에 근거해 비밀 정보원들로부터 몰래 수집한 것이라고 WP는 전했다.

이 가운데 2월 17일 자 문건에 따르면,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에티오피아 수도에서 열린 아프리카 연합 정상회담 참석차 현지를 방문했을 때 분쟁지역인 티그라이주를 들르려 했으나 데메케 메코넨 에티오피아 부총리 겸 외무장관으로부터 거부 서한을 받았다.

이에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타예 아츠케 셀라시 암데 주 유엔 에티오피아 대표에게 항의하려 했다고 한다.

해당 문서는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재임 중 이 같은 서한을 받은 건 처음이라며 타예 대표를 통해 데메케 장관에게 그의 ‘격노’를 전하려 했다”고 적었다.

날짜가 명시되지 않은 또다른 기밀문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연합 정상회담에서 아비 아머드 에티오피아 총리가 “티그라이 지역 방문을 거부한 데 사과했다”고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2월 19일 유엔 간부에게 말한 것으로 나온다.

이후 뉴욕으로 돌아온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3월 초 스위스와 이라크, 카타르를 연달아 방문했다.

또 다른 문서는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그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어한다고 말했을 때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기뻐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유엔의 한 오랜 외교관은 73세의 고령인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몇 주간의 해외 출장 뒤 다시 우크라이나까지 장시간 비행을 해야 하고, 수도 키이우까지는 자동차로 11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문서에 따르면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3월 8일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 뒤 그의 대변인 스테판 두자릭에게 당시 ‘국제 여성의 날’ 기념행사가 불시에 진행된 데에 “정말 화가 났다”고 말했다.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은 구테흐스에게 예고 없이 여군들에게 메달을 수여하는 행사를 진행했고, 이후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축하하는 듯한 사진과 영상을 게시했다.

해당 문서에는 이후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두자릭 대변인에게 자신은 우크라이나를 도우러 갔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은 “우리를 팔아먹으려고 모든 일을 했다”고 말했다고 적혀 있다.

두자릭 대변인은 14일 WP에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생산적인 회담 끝에 상의 없이 메달 수여식이 열리자 매우 놀라고 불쾌해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가 ‘팔아먹다’는 용어를 쓰진 않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구테흐스 사무총장을 염탐한 정황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영국 BBC 방송은 구테흐스 사무총장과 사무부총장 등의 사적인 대화가 담긴 미국 기밀 문건을 보도했고, 연합뉴스가 입수한 유출 추정 기밀문서에도 미국이 구테흐스 사무총장과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등 국제기구 수장들의 대화를 엿들은 정황이 담겨 있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유엔난민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