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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광장과 스페인이끼 사이를 걷는 남부의 도시”
역사와 예술이 만나는 거리…걷고 머무르는 여행지로 부상
남부의 항구 도시 사바나는 유령 이야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도시는 과거에만 기대어 서 있지 않다. 역사 지구의 저택과 교회, 광장 사이로 예술 대학의 작업실과 현대 미술 공간이 자리 잡으며 도시의 결은 한층 복합적으로 변했다. 노예제의 기억과 식민지 시대의 건축, 현대 예술과 지역 공동체 문화가 한 공간에서 겹친다. 뉴욕타임스(NYT) 여행 섹션은 사바나에서 보낸 36시간을 통해 그 겹을 충분히 따라가 볼 수 있다고 했다.
1. 첫째 날 오후 : 해안에서 태어난 문화, 굴라 기치의 이야기
여행은 역사 지구를 잠시 벗어나며 시작하는 편이 좋다. 한때 굴과 게를 가공하던 공장을 개조한 핀 포인트 헤리티지 뮤지엄은 사바나 해안 문화의 뿌리를 설명한다. 이곳은 굴라 기치(Gullah Geechee) 공동체의 역사와 전통을 다룬다.
이들은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와 쌀·면화·인디고 농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후손이다. 해안과 섬 지역의 고립된 환경 속에서 그들은 독자적인 언어와 음식, 예술을 발전시켰다. 전시에는 전통 공예품과 공동체 구성원의 구술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 사바나를 단순한 관광지로 보는 시선을 교정해 주는 공간이다.
도시를 이해하려면 광장과 저택만이 아니라, 그 이면의 노동과 이동, 강제된 역사까지 함께 봐야 한다.
저녁이 되면 도시의 리듬은 식탁으로 이동한다. 남부 전통 요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레스토랑들이 늘어나면서 식사는 관광 일정이 아니라 하루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밤에는 바와 라이브 음악 공간에서 지역 주민과 방문객이 섞이며 하루가 늦게 마무리된다.
2. 둘째 날 오전 : 광장에서 광장으로, 도시의 구조를 걷다
아침의 사바나는 고요하다.
사바나의 중심은 걷는 데 있다. 18세기 도시 설계에 따라 배치된 광장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진다. 역사 랜드마크 지구를 천천히 걸으며 주택, 상점, 교회를 번갈아 마주하다 보면 도시 구조가 자연스럽게 읽힌다.
포사이스 공원은 그중 가장 넓은 공간이다. 주말이면 지역 농산물 시장이 열리고, 시민과 여행객이 뒤섞인다. 여기서 몇 블록만 이동하면 세인트 존 더 뱁티스트 대성당이 나타난다. 내부의 벽화와 스테인드글라스는 남부 고딕 양식의 정점을 보여 준다.
근처의 SCADstory는 사바나 예술 디자인 대학(SCAD)의 성장 과정을 소개한다. 이 대학은 도시 전역의 건물을 매입·복원하며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켰고, 이는 사바나가 예술 도시로 자리 잡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이어 텔페어 미술관 세 곳을 둘러볼 수 있다. 남부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 미술관인 텔페어 아카데미, 현대 전시를 선보이는 젭슨 센터, 그리고 어린이 미술관까지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특히 오웬스-토마스 하우스와 노예 숙소 투어는 남부 상류층의 화려함과 그 아래 놓인 억압의 현실을 함께 보여 준다. 이 도시의 미학은 항상 그늘과 나란히 놓여 있다.
3. 둘째 날 오후와 밤 : 역사 지구 밖, 현재의 사바나
포사이스 공원 남쪽으로 내려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소규모 상점과 작업실, 독립 서점과 레코드 숍이 모여 있는 지역은 사바나의 현재를 드러낸다. 과거의 건축을 배경으로 젊은 창작자들이 활동하는 공간이다.
이 지역에서는 특정 명소를 목표로 이동하기보다, 거리 자체를 관찰하는 편이 낫다. 오래된 벽돌 건물 안에서 열리는 소규모 전시, 지역 상인이 만든 공예품, 거리 음악가의 연주가 이어진다. 관광 엽서에 담기지 않는 사바나의 생활감이 이곳에 있다.
저녁 무렵에는 ‘유령 투어’ 대신 실제 역사를 다루는 도보 해설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바나는 초자연적 이미지로 소비되지만, 노예제·전쟁·항구 무역의 역사는 충분히 사실 자체로 강렬하다.
저녁 식사는 다양한 문화가 섞인 메뉴로 이어진다. 남부 재료와 국제 요리를 결합한 레스토랑은 사바나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늦은 식사는 여전히 도시의 중요한 일상이다.
4. 마지막 아침 : 이끼 드리운 참나무 길, 웜슬로
여행의 마무리는 도심에서 차로 이동해 웜슬로 주립 역사 유적지로 향한다. 철문을 지나 직선으로 이어진 참나무 길은 사바나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스페인 이끼가 늘어진 나무 아래를 걷다 보면, 이곳이 한때 식민지 개척자의 사유지였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유적지에는 조지아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유적 중 하나가 남아 있고, 습지와 자연 탐방로가 이어진다. 셔틀 투어를 통해 초기 정착사와 농장 운영의 구조를 들을 수 있다.
사바나는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단일한 이미지가 아니다. 식민지 시대의 설계, 노예 노동, 해안 공동체 문화, 예술 대학의 확장, 현대 창작자들의 활동이 겹쳐 만들어낸 결과다.
36시간은 짧지만, 이 도시는 걷는 이에게 구조를 보여 준다.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지 않은 채, 같은 길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