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재판’ OJ 심슨 변호사 애틀랜타서 별세

프랜시스 리 베일리, 향년 87세…말년에 자격 잃고 파산까지

“걸출하지만 사랑받진 못한 사람”…심슨 “최고 변호사”조의

3일(현지시간) 87세로 숨진 미국 유명 변호사 프랜시스 리 베일리 주니어
3일 87세로 숨진 미국 유명 변호사 프랜시스 리 베일리 주니어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아내 살해 혐의로 기소된 미식축구 스타 OJ 심슨을 변호했던 변호사 프랜시스 리 베일리 주니어가 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AP, 로이터통신 등은 이날 베일리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한 병원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몇 달 전부터 해당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52년 하버드대를 그만두고 해병대에 입대해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1957년 제대 후에는 보스턴대 로스쿨로 진학했고, 1960년 수석으로 졸업했다.

베일리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건 ‘샘 셰퍼드 사건’을 맡으면서부터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신경외과 의사로 지내던 셰퍼드는 1954년 임신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베일리는 그의 항소심을 맡았다.

당시 베일리는 배심원이 언론보도 등에 노출돼 적절하지 않은 평결을 했다는 논리를 펼쳤고, 전심 판결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샘 셰퍼드 사건은 1993년 영화 ‘도망자’로 재구성되기도 했다.

베일리는 1971년 ‘미라이(My Lai) 사건’으로 기소된 육군 대위 어니스트 메디나, 1974년 은행강도 사건을 저지른 ‘신문왕’ 랜돌프 허스트의 상속녀 패티 허스트 등 논란을 일으킨 인물들을 주로 변호했다.

미라이 사건은 베트남전쟁 당시인 1968년 3월 미 육군이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성 선미(Son My) 지역의 미라이 마을에서 어린이와 부녀자 등 민간인 수백명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리 베일리(왼쪽)와 OJ 심슨(오른쪽)
리 베일리(왼쪽)와 OJ 심슨(오른쪽)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무엇보다 베일리는 1994년 전처 니콜 브라운과 그의 연인 론 골드먼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심슨을 변호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그는 OJ 심슨 사건을 담당한 형사 마크 퍼먼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논리를 내세워 무죄 판결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베일리는 법정모독죄 등을 이유로 2001년 플로리다주, 2003년 매사추세츠주에서 각각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2016년 6월 연방세금 500만달러(약 55억9000만원)를 내지 못해 파산신청을 하는 등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커리어를 통틀어 베일리는 거만하고 이기적이면서도 대담하고 꼼꼼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그는 특히 반대 심문에 강했고 거짓말탐지기에도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활동하는 유명 변호사 로이 블랙은 “베일리는 걸출하지만 사랑받진 못한다”며 “그는 토론 중에 핵심을 찌르는 건 잘하지만, 인기 투표에서는 절대 못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베일리는 생전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전문가로서 시험대에 오르게 하거나, 얼굴이 팔리거나, 수임료가 많은 사건은 거절할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