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겨도 괜찮아”…못난이 농산물의 맛있는 반란

‘제로 웨이스트’ 바람 타고 부상한 못난이 농산물 인기

모양이 특이한 당근 [어글리어스 제공]

모양이 특이한 당근 [어글리어스 제공]

에코주부(ecojubu)라는 아이디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활동하는 임희선(34) 씨는 작년 말부터 국내 한 업체에서 못난이 채소 박스를 정기 구독하고 있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마트 진열대에 오르지 못한 채소와 과일들이 종이 상자에 담겨 매주 배송된다.

배달된 상자 안에는 수확 도중 흠집이 난 고구마도 있고, 모양이 반듯하지 않은 오이도 있다. 멀쩡해 보이는 양배추는 기준 중량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갈 곳을 찾지 못했다. 때로는 과잉 생산이나 급식 중단으로 판로가 막힌 채소가 포함되기도 한다.

플라스틱 박스를 쓰지 않고 신문지와 생분해 비닐을 사용해 포장을 줄였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임 씨는 “쓰레기를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를 시작하면서 버려질 위기에 처한 친환경 못난이 농산물을 최소한의 포장으로 판매하는 서비스에 관심을 갖고 이용하게 됐다”며 “시중 유기농 제품보다 저렴하지만 품질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주부 임희선 씨가 받은 못난이 채소 박스 [인스타그램 캡처]

주부 임희선 씨가 받은 못난이 채소 박스 [인스타그램 캡처]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오르는 농산물은 모두 ‘외모’ 심사를 거친 것들이다.

혹이 난 당근이나 표면이 매끈하지 않은 사과처럼 예쁘지 않은 농산물은 상품성이 없어 산지에서부터 폐기된다.

‘크기’도 중요한 심사기준이다. 너무 크거나 작으면 중량이 들쭉날쭉해진다는 이유로 마트 진열대에 오르지 못한다.

이처럼 시장이 만든 ‘규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못난이 농산물을 폐기하는 오랜 관행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있다. 임 씨처럼 환경에 관심을 두고 ‘가치 있는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와 공급자들이다.

예전에도 대형 유통업체나 지자체가 못난이 농산물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이벤트성 행사를 벌이곤 했지만, 최근에는 못난이 농산물만을 골라 상시 가정에 유통하는 업체가 속속 생기면서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어글리어스는 지난해 10월 못난이 농산물 정기 구독 서비스를 국내 처음으로 선보였다.

농가로부터 직접 조달한 못난이 친환경 농산물 7∼8종을 소량씩 포장해 매주 혹은 격주 배송한다. 빠른 구독자 수 증가에 힘입어 못난이 농산물을 단품으로 판매하는 쇼핑몰을 여는 등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어글리 바스켓 역시 지난 8월부터 못난이 농산물 정기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인터넷 쇼핑몰 11번가가 지난해 선보인 브랜드 ‘어글리 러블리’나 ‘프레시 어글리’처럼 못난이 농산물을 상시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도 있다.

최현주 어글리어스 대표는 “판로를 찾지 못해 폐기되는 못난이 농산물은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초래한다. 특히 음식물 폐기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전체의 8%를 차지할 만큼 환경오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공급자는 골칫거리였던 못난이 농산물의 판로를 찾아 추가 이익을 얻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농산물을 구매하면서 환경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녹이 생긴 사과 [어글리어스 제공]

동녹이 생긴 사과 [어글리어스 제공]

사실 못생긴 과일이 지닌 외관상 흠은 자연 친화적이고 사람에게도 좋은 방법으로 재배하는 과정에서 생긴 자연스러운 흔적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쇠에 녹이 낀 것처럼 사과 껍질이 거칠어지면서 금색으로 변하는 ‘동녹’ 현상은 열매에 봉지를 씌우지 않는 ‘무대재배’를 할 경우 많이 발생한다. 자연 그대로를 견디고 맛있게 영근 흔적으로 먹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뿐더러 맛이 더 뛰어난 경우도 많지만, 시장에서는 외면받기 일쑤다.

벌레가 갉아먹어 생긴 잎채소의 자국은 농약을 쓰지 않은 친환경 농산물에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흔적 때문에 못난이로 분류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벌레도 탐낼 만큼 맛있고 건강한’ 채소라는 증거다.

농산물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물이 아니기 때문에 재배 환경에 따라 다양한 생김새로 자라는 것이 당연한데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규격을 만들고 거기에 맞추려다 보니 문제가 생겼을 뿐, 못난이 농산물의 맛과 영양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 최 대표의 설명이다.

최 대표는 “‘못난이’라는 이름에 붙어있는 선입견이 많이 덜어져 더 많은 식탁에서 활용되고 가치가 발현되었으면 좋겠다”며 “더 많은 농산물을 구하고 나아가서는 음식물 폐기를 줄일 수 있는 모델들을 계속 시도하고 만들어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