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성공적인 실패

아틀란타 연합장로교회 손정훈 담임목사

손정훈 목사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이야기이다. 전쟁의 말기인 1944년 3월, 일본은 미국과 영국등으로부터 극비리에 입수한 사진과 도면을 바탕으로 일본 최초의 항공모함, 다이오호를 건조하였다.

그러나 처녀 출항한 이 항공모함은 건조된 지 석달 만에 미군 잠수함의 어뢰 한방을 맞고는 그만 1000명의 수병들과 함께 태평양의 심해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처음 연료탱크에 어뢰를 맞았을 때 발생한 혼합가스들이 데크밑 격납고에 가득 차 올랐다가 사고 후 6시간만에 대폭발로 이어진 것이었다.다른 모든 것은 비슷하게 복제를 하였지만, 환기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하였던 까닭이다.

전시에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경험한 일본 방위청은 이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전함 건조와 관련한 엄청난 노우 하우를 축적하게 되었고, 그 사건으로 일본은 막강한 해군 기술력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일본에는 실패학이라는 학문이 있다. 그래서 세계적인 실패 사례들만을 엄선하여 원인을 분석하고, 교훈을 얻은 후에 다음 번 프로젝트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실패로부터 배운다. 실패는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타고난 귀한 은사가 있는데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썩히는 것이 게으름이라는 죄인 것이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단기간에는 가장 안전할 길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려는 것이 더욱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통해 변화와 개혁을 거부한 이들이 맞는 비참한 종말을 숫하게 목격해 왔고, 그와 반대로 위험한 길을 택하였지만 결국에는 그 수고에 몇 갑절이 되는 기쁨을 돌려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맹인이지만 한인으로서 미행정부의 최고위직에 오른 강영우 박사는 역경지수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에게는 실패와 좌절이 일상적인 경험이었기에 웬만한 어려움이 찾아와도 쉽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전후 세대는 앞선 세대가 이룩해 놓은 세상의 편안함과 편리함만을 누려왔기 때문에 작은 실패에도 치명상을 입고는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자신이 앞을 볼 수 없는 핸디캡의 소유자였지만, 박사학위에 이를 때까지 필요한 수 천페이지 분량의 도서와 참고자료를 모두 점자화 해준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과 자신의 긍정적인 사고 방식에 힘입어 좌절의 늪에서 성공을 일구어 낸 그였기에 그의 실패예찬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실패를 경험한 바로 그 당시에는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은 성공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꼭 필요했던 영혼의 비타민이었음을 우리는 종종 발견한다.

교인 중에 어릴 적에 연탄가스 중독으로 소아마비가 와서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는 청년이 있다. 그런데 그가 해맑은 표정으로 스스로를 소개할 때 마다 늘 덧붙이는 멘트가 걸작이다.

“산소 같은 청년! 아무개입니다.”

일산화탄소를 너무 많이 마셔서 중병을 앓게 되었지만 이젠 그 유독가스를 능히 물리칠 수 있는 신선한 산소 같은 존재로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삶이 예상치 못한 커브 볼을 던질 때 그것을 핑계 삼아 소중한 인생을 포기해 버리거나 그만 정신줄을 놓아 버리고 싶어지는 것이 연약한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 내재된 본성에 끊임없이 반항하며 살아가는 인생은 복이 있다. 일어나려 시도할 때마다 다시 넘어져 고통당 할 수 있지만, 그래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감수하지 않으면 진보란 요원한 것이다.

“No risk, no gains”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사업도, 사랑도, 신앙도…

하나님도 인간이 자유의지를 소유할 때 하나님을 배신하는 선택을 내릴 수도 있음을 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한 지극한 사랑으로 그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셨을 때 억지가 아닌 진심으로 그 분을 사랑하는 이들을 자녀로 얻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팬더믹이 가져온 예상치 못한 삶의 담벼락을 마주하고, 그만 희망을 놓아 버리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줄 안다. 부디 ‘성공적인 실패’를 스프링 보드 삼아 다시 한번 힘차게 뛰어 오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