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한인교회에서 부목사로 살아가기”

연합감리교뉴스 뉴욕 후러싱제일연합감리교회 박영관 목사 기고문 화제

연합감리교(UMC) 매체인 연합감리교뉴스가 3일 ‘대형 이민교회에서 부목사로 살아가기’라는 제목으로 뉴욕 후러싱제일연합감리교회(담임목사 김정호) 박영관 목사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대형 한인교회에서 부목사들이 하는 역할과 그들의 고충을 소개하는 이 칼럼은 교계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연합감리교 뉴스 본문 링크

다음은 기고문 전문이다.

후러싱제일교회 홈페이지.

“코로나19팬데믹은 지난 2년간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안겨주었고, 새로운 사역을 시도하게 했습니다.

후러싱제일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저는 기획행정, 교구목양, 교육, 예배찬양을 담당해왔습니다. 그러나 팬데믹은 저의 사역을 온라인 예배, 화상(virtual) 성가대, 줌을 이용한 성경공부, 속장 교육, 속회 모임을 넘어 온라인 성찬식으로까지 확장시켰습니다. 팬데믹이 우리의 삶을 움츠러들게 할수록, 저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교인들의 신앙이 성장할 수 있도록 사역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부목사는 인정하든 안 하든 담임목사의 많은 부분을 닮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그 시간이 담임목사와 같이 오래 사역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나누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부목사는 담임목사의 목회 철학과 목회 전반에 관한 것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배웁니다. 그래서 때때로 설교와 예배 인도뿐 아니라, 회의를 진행할 때에도 담임목사의 스타일을 닮아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후러싱교회에는 연령이 높으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 장례가 잦은 교회 특성상 담임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장례예배에 자주 참석하게 됩니다. 저 역시 보고 배운 방식대로 장례를 인도하는데, 그러면 유족뿐 아니라, 조문객들까지도 장례 예배에서 은혜를 받았다고 얘기하곤 합니다. 잘 따라 한 덕분입니다.

담임목사님 말고도 후러싱 제일 연합감리교회에는 함께 사역하는 목회자가 많습니다. 저는 사역자가 많은 게 참 좋은데, 그것은 함께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개성이 강한 여러 사역자가 한 곳에 모여 있기 때문에, 불협화음을 낼 소지도 다분합니다만, 함께 모여 오케스트라의 멋진 연주 같은 근사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함께 계획하고, 각자가 맡은 일들을 성실히 실행한 후, 다 같이 모여 치킨을 먹으면서 평가할 때마다, 사역의 성취감과 만족감은 올라가고, 끈끈한 동지애마저 경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저는 이곳에서 동료 사역자들과 함께 원팀을 이루어 사역하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습니다.

최근, 사순절을 준비하며 40일 동안 전교인이 묵상할 수 있는 ‘사순절 묵상집’을 제작했습니다. 사순절 묵상집을 기획하고, 사역자들과 머리를 맞대어 계획을 세운 후, 누구는 성도들의 글을 모으고, 누구는 자료를 모아 어떻게 편집하며, 어디에서 인쇄하고, 교인들에게는 어떻게 나누어줄 것인지 등등 구체적으로 사역을 분배합니다. 이렇게 계획한 대로 실행한 후 결과물이 나올 때면, 함께하는 사역의 보람과 즐거움은 이미 배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부목사 때만큼 창의적으로 목회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절기 행사와 목회 일정을 창의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하며 실행할 수 있는 훈련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실 부목사는 할 일이 참 많습니다. 빡빡한 목회 일정을 비롯해 부목사에게는 늘 처리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 줄줄이 사탕처럼 대기하고 있어, 육체적으로도 매우 피곤합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3단계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닫는다. 그냥 우스갯 소리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보다 더 쉽고 간편하며, 단 한 번에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슈퍼맨이나 배트맨 또는 스파이더맨 같은 슈퍼히어로의 도움도 필요 없습니다. 단지 부목사한테 시키면 됩니다.

경제적으로 교회와 담임목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불안한 현실과 영주권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불안정한 체류 신분 등을 감내해야 하는 부목사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목사로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한 채 영주권이 해결되기만을 기다린다거나 담임 목회지만을 학수고대하게 되는 경우도 물론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바쁘고 불안한 현실만을 한탄하며 보내기에는 부목사의 시간은 너무 아깝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억지 춘향으로 사역하기보다 창의적으로 제안하고 계획하며 도전하는 슈퍼히어로 부목사들도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부목사는 담임목사가 짊어진 목회에 대한 책임의 무게보다 가벼운 짐을 지고 갑니다. 그래서 어떤 사역이든 충분히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많은 경우, 교회 사역의 패턴은 담임목사가 방향을 제시하고, 부 교역자들은 실질적인 사역과 프로그램 계획 및 진행에 집중합니다.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담임목사는 전술과 전략을 짜는 감독이고, 부목사는 전술과 전략을 선수들에게 전달하고 훈련시키는 코치의 역할입니다. 다만, 부목사의 역할은 운동장 밖에서 지도만 하는 것이 아닌, 선수인 교인들과 함께 직접 운동장을 뛰며, 교인들이 삶이라는 경기에서 잘 뛰고 빌드업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지도하는 동시에 자신도 훈련받고 승리를 견인하는 플레잉코치 역할도 해야 합니다.

이렇게 부목사가 동료 사역자들과 함께 손발을 맞춰 원팀으로 같이 경기에 참여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상호 신뢰입니다. 담임목사와 부목사 사이, 부목들 사이, 부목사들과 교인들 사이에 신뢰가 있어야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종종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저는 교회 사역에서 담임목사와 교인 사이의 중매쟁이 역할을 하게 됩니다. 흔히 중매쟁이에게 따라다니는 말이 잘 되면 술이 석 잔이요 못 되면 뺨이 석 대라고 합니다. 부목사가 딱 이렇습니다. 어느 교회나 교인의 100%가 담임목사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좋아하는 분도 있고, 싫어하는 분도 있고, 좋다 싫다 왔다 갔다 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것도 사안마다 다르고, 설교 때마다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교인이 담임목사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많은 교인이 담임목사에게 직접 전할 수 없는 내용을 부목사를 통해 전달하는 ‘부목사 찬스’를 사용합니다. 아마도 대형 교회 교인들이 숙지한 나름의 대화법이겠지요. 부목사는 담임목사와 교인들 사이를 오가며, 중매쟁이처럼 그들의 사이를 조정하는 중간위치에 있습니다.

또 다른 가교 역할은 파트타임 사역자들과 교회 직원들의 사정을 담임목사에게 적절하게 전달하고 조율하는 완충지대 역할입니다. 평화 시에는 DMZ처럼 조용하지만, 사건이 터지면 양쪽으로부터 샌드백같이 신나게 얻어터지는 사람이 또한 부목사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희생양이 되기 십상인 부목사의 어깨에 짊어지는 책임의 양은 ‘무한대’이지만, 좋든 싫든 이로 인해 부목사의 역량도 무한대로 성장하게 됩니다.

뉴욕 후러싱제일연합감리교회(담임 김정호 목사)의 교인들이 푸드팬트리를 위해 직접 구매한 식료품을 나누어 담고 있다. 사진 제공, 뉴욕 후러싱제일연합감리교회.뉴욕 후러싱제일 연합감리교회(담임 김정호 목사)의 교인들이 푸드팬트리를 위해 직접 구매한 식료품을 나누어 담고 있다. 사진 제공, 뉴욕 후러싱제일 연합감리교회.

후러싱제일 연합감리교회에서의 부목사 사역은 재래시장의 좌판 위에 놓인 내복 같습니다. 교인들은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뉴욕에 살지만,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에 올라가 제대로 뉴욕을 내려다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생활합니다. 그래서 재래시장의 모습처럼, 바쁘게 움직이며 부대끼고 살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거칠어 보이지만, 대부분이 속정 많고 따뜻한 분들이며, 그 때문에 우리 교회는 인심 좋은 재래시장처럼, 한 줌 더 얹어주는 ‘덤’ 인심과 ‘정(情)’이 넘치는 곳입니다.

몇몇 이민 교회에서 저는 자존심은 강하고, 자존감은 낮은 교인들을 만났습니다. 겉옷은 명품이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하지 못해 그 온기를 교회에서 찾으려고 하는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맨하탄 빌딩 사이에 불어닥치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이길 수 있는 옷은 명품 외투가 아니라, 삼중 보온 메리야스 내복인 것처럼, 문턱 높은 백화점보다 오며 가며 들리는 마음 편한 재래시장 좌판에 있는 내복처럼, 교인들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공감해주며 진심으로 기도해드리는 우리 부목사들의 사역이 저는 화려해 보이지는 않지만 참 귀하다 생각합니다.

담임목사인 김정호 목사님이 제게 붙이신 별명은 ‘원로부목사’입니다.

50대 초반에 부목사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다, 한참 나이 차가 나는 어린 부목들과 함께 일하는  저의 처지를 생각해주셔서 농담 반 위로 반 그렇게 부르십니다. 저 또한 담임이신 김 목사님께서 비공식적으로 임명해주신 기독교 역사상 유일무이한 신령직 직분이라 그렇게 불리는 게 싫지 않습니다.

아직 배울 게 많고 실수투성이인 원로부목사이지만, 오늘도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았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내일 또다시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감사한 마음으로 사역하며, 오늘을 달립니다.

박영관 목사는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드루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