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크러파이스를 “미군 참전용사들 ‘새크리피스’에 감사…”
유창함은 커녕 한심한 영어실력 한국 외교관 적지 않아
세부적 외교교섭 걱정…차라리 동시통역 동반하는 편이
한국에서 가장 ‘핫’한 디지털 뉴스 사이트인 뉴스버스(newsverse.kr)에 본보 이상연 대표기자가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이번 주 칼럼을 전재해 소개한다. /편집자주
몇 년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한 6.25전쟁 미군 참전용사 행사에서 애틀랜타총영사가 영어로 연설을 했다. 미리 작성한 연설문을 읽는 것이었지만 강약이나 어조가 제 멋대로여서 알아듣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결정적으로 미군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감사한다는 부분에서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
그는 희생을 뜻하는 영어 단어 ‘Sacrifice’를 ‘새크러파이스’ 대신 ‘새크리피스’라고 발음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인들이야 대충 알아듣는 표정을 지었지만, 미군 참전용사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 미주 동남부 지역의 외교를 책임지는 총영사가 중학생도 하지 않을 실수를 한 것이다.
이 사건 얼마 후 한미 양국 우호를 위한 국제행사가 열려 외교부 북미국 북미 2과장이 애틀랜타를 방문했다. 북미 2과장은 외교부의 핵심요직으로 꼽히는 자리로 북미국 내에서도 미국 의회를 상대로 외교활동을 펼치는 중책을 맡고 있다.
하지만 행사가 끝난 뒤 해당 과장이 행사 주최측에 대한 감사 메시지를 전했는데, 사용하는 영어 어휘나 문장 구성, 발음이 모두 창피한 수준이었다. 한국 외교관 가운데 가장 영어를 잘해야 하는 사람의 수준이 저 정도라면 다른 외교관들의 영어실력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강경화 전 장관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당시 외교부 조사 결과 외교부 직원들의 영어 실력을 1~5등급으로 나누어 분류한 결과 동시 통역이 가능한 1등급은 매우 드물고, 2~3등급이 약 8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험 회화 부문의 3등급에는 “주로 간단한 접속사를 활용하며, 생각을 조리있게 표현하는데 다소 미흡하다” 거나 “모든 분야에서 외국인 특유의 오류가 조금씩 누적돼 의사소통에 다소 지장을 초래한다”는 수준이 포함돼 있다.
특히 “문법과 어휘 오류가 의사 전달을 방해하는 수준”인 4등급이나 “문장구조나 어휘 오류는 물론 단어, 철자 오류도 빈번한 수준”인 5등급이 영사직에 선발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 언어’라는 고유의 단어가 있을 정도로 외교현장에서의 언어 소통은 국가간 교섭 내용을 좌우할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
얼마 전 이낙연 전 총리가 들려준 일화다. 카투사(KATUSA) 출신의 이 총리는 2018년 도미니카공화국을 방문했을 당시 다닐로 메디나 대통령과의 면담 자리에서 “대통령 각하를 뵙기 위해 생애를 공부하고 왔는데, 저와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다”면서 “시골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자랐고 법학을 공부하고 정치를 경험했지만 저는 각하같은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덕분인지 메디나 대통령은 16억달러 규모의 LNG발전소 공사를 경쟁 입찰에서 수의 계약으로 바꿔 한국업체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대화는 통역을 동반한 것이었지만 한국 외교관들이 이런 수준의 대화를 미국측 카운트파트너와 나눌 수 있을런지, 현지에서 한국외교관을 접하다보면 이런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차라리 한국 외교관들에게도 현지 동시 통역을 붙여주는 편이 나은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