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과 승무원의 음식 보따리 비웃지 말아 주세요”

한국 항공사 국제선 종사자들, 코로나19 탓에 ‘산넘어 산’

미국은 호텔 서비스도 안돼…탑승객 늘어나는 것이 위안

“아침은 즉석밥과 제육볶음, 점심은 강된장 보리 비빔밥, 저녁은 즉석밥에 동원 고추 참치입니다. 매일 이런 것들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습니다.”

오늘도 한 국적 항공사 기장은 즉석밥을 중심으로 한 인스턴트 음식 보따리를 잔뜩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한 기장이 한번 운항에 들고 나가는 음식 보따리 [독자 제공]
이런 것들을 들고 공항 내를 다닐 때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멋진 기장의 모자와 각 잡힌 승무원들의 복장과는 분명 거리가 있는 보따리기 때문이다.

이들이 즉석밥 보따리를 들고 비행기를 타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다. 그럴싸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대신 호텔 방에서 이런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다.

문제는 장거리 비행을 할 때다. 기항 시간이 긴 만큼 24∼48시간을 꼬박 이런 음식을 먹고 버텨야 한다.

한 기장은 “주로 즉석밥과 캔 김치, 참치캔, 컵라면이나 죽 등을 비행 나갈 때 챙겨간다”면서 “부피도 부피려니와 저런 걸 이틀씩 먹는 것도 고역”이라고 말한다.

운이 좋아 호텔 방에 주방 시설이 있으면 봉지에 든 육개장 등을 끓여 먹을 수 있다. 한 승무원은 삼각김밥과 닭 칼국수를 먹을 수 있었을 때 정말 기뻤다고 했다.

운이 좋아 호텔 방에 주방 시설이 있으면 봉지에 든 육개장 등을 끓여 먹을 수 있다. [독자 제공]
한 항공사는 아예 즉석밥과 캔 참치 등으로 구성된 인스턴트 음식 꾸러미를 승무원들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승무원들은 수개월에 걸쳐 비슷한 메뉴만을 먹다 보니, 만나면 인스턴트 음식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자신들을 발견하곤 허탈해한다고 한다.

또 다른 기장은 “이제 해외 기항 도시에서 음식 포장을 하는 레스토랑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면서 “그러나 불안한 마음에 오늘도 인스턴트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북미 지역 도시를 중심으로 많은 호텔이 여전히 식당 운영을 하지 않는다. 또 룸서비스로 음식을 배달하는 호텔은 있지만, 서비스료가 매우 비싸다.

한 가지 더 큰 문제는 승무원들이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몸에 이상이 있을 때 국내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종합병원은 받아주지만, 지역 병·의원의 경우 진료 자체를 하지 않는 곳이 많다.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면 2주간 영업 정지를 당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외국 방문기록이 자동으로 뜨게 돼 있다. 처음부터 진료를 받을 길이 막힌 셈이다.

한 기장은 “승무원들을 받아주는 병·의원에 대한 정보를 커뮤니티에 물어보는 승무원들도 많다”면서 “해외 다녀온 기록이 떠서 진료 거부를 당하면 승무원은 2주간의 자가격리 대상이 아니라고 읍소를 해야 하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지만 승무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승객이 늘어났을 때가 그렇다.

또 다른 기장은 SNS에서 “오늘은 어찌 된 일인지 승객 120명을 태웠다”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일해도 이런 날은 정말 보람이 있다”고 했다. 그는 어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들이 왔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