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남의 기업’으로 몸집키운 SK의 한계

창업후 70년간 공기업 ‘불하’로 규모 키우며 성장

‘차세대 먹거리’ 배터리 사업 지름길 노리다 ‘발목’

 

“한국 재계 서열 시가총액 기준 2위, 자산액 기준 3위.”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그룹인 SK의 위상이다. 한국 이동통신업계의 독보적 1위 기업인 SK텔레콤과 정유업계 1위 기업인 SK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반도체기업인 SK하이닉스는 전세계적인 반도체 호황 덕으로 새로운 캐시카우(Cash Cow)로 떠올랐다.

하지만 SK그룹을 대표하는 이들 기업은 모두 SK가 창업한 회사가 아니라 정부로부터 ‘불하’받은 ‘남의 기업’ 들이었다. 1980년 신군부 집권 변혁기에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해 SK에너지로 키웠고, 최태원 회장의 장인인 노태우 대통령 재임기간인 1992년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냈다.

이동통신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 후보의 반대로 사업권을 반납했지만 1994년 재도전해 아예 정부로부터 한국이동통신을 인수, SK텔레콤으로 탈바꿈시켰다. 2012년에는 현대그룹 계열사였다 정부채권단에 넘어간 하이닉스를 인수해 SK하이닉스로 개명했고 세계 메모리 반도체 분야 2위 기업(1위는 삼성전자)으로 성장시켰다.

사실 SK그룹의 모체인 선경직물 자체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의 소유였던 이른바 ‘적산 기업’이었다. 1953년 선경직물 계장이었던 최종건 창업주가 이를 정부로부터 불하받아 선경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삼성과 LG, 쌍용 등 다른 재벌기업들도 적산기업 인수로 기틀을 마련했지만 SK그룹은 독창적인 사업분야 개척 대신 70년의 역사 내내 공기업 인수로 몸집을 불린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SK그룹이 다른 회사를 인수하지 않고 도전하려 했던 분야가 바로 전기차 2차 배터리 사업이었다. 유공에서 유화(석유화학) 분야를 분리해 설립한 SK이노베이션이 ‘차세대 먹거리’ 사업으로 야심차게 추진했던 것이 전기차 배터리였으며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조지아주에 총 5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이곳 한인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됐다.

SK이노베이션은 한국 기업들 가운데서도 직원들의 연봉과 복지후생이 가장 좋은 곳으로 명성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급여와 대우를 무기로 다른 기업이 키워놓은 인재들을 빼내와 사업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성장시키려 한다는 비판을 자주 받아왔다.

이러한 비판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 바로 10일 내려진 미국 ITC의 영업비밀 침해 판결이다. 현재 전기차 2차전지 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핫’한 분야여서 마땅히 인수할 기업도 없는데다 후발 주자로서 선두기업인 LG화학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초조함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SK가 직면한 비판은 영업비밀 침해에 대해 ‘유죄’가 인정됐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지난해 ITC의 사전 결정을 통해 패소가 거의 확실해 졌는데도 LG측과 제대로 합의를 이끌어내지 않고 “끝까지 가보자”며 ‘헛배짱’을 부린 만용이 오히려 더 큰 비난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LG측이 3조원 대의 합의금을 요구했다고 하지만 앞으로 2차 전지 시장의 규모나 미국시장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적극적인 협상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훨씬 경제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ITC 판결 거부권 행사를 바란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더욱 비현실적인 기대이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ITC의 영업침해 판결에 개입한 사례는 단 한번도 없으며 외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비윤리적인 행태를 눈감아주는 결정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벌써부터 LG측의 합의금 요구액이 5조원대로 올랐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SK가 조지아 공장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금액과 같은 수준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된 셈이다. 독창적인 사업을 제대로 키워보지 못한 기업, “기업은 영구히 발전해야 하며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이를 위해 일정 기간 기여해야 한다”는 이상한 기업관을 가진 ‘SK 재벌’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연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