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려는 이유로 제시한 펜타닐 문제는 미국에서 국가 안보 위협 요인으로 거론될 정도로 매우 심각하다.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은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의 일종으로 헤로인보다 50배나 강력하다.
미국에서는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2022년에만 약 11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18∼49세의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펜타닐은 수년간 미중 관계에서 큰 걸림돌로 작용했으며, 전임 미국 행정부에서도 중국을 압박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첫 임기 때인 지난 2017년 10월 오피오이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2018년 12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펜타닐 규제 강화를 요구했다.
미국의 관세 압박을 받던 시 주석은 전면적인 무역 전쟁을 피할 심산으로 트럼프의 여러 요구를 수용하면서 그중 하나로 펜타닐을 규제 약물로 지정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미국에 펜타닐을 판매하는 사람은 중국에서 법정 최고형에 처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당시 백악관은 설명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25일 대(對)중국 관세 10% 추가 계획을 발표하면서 “중국 대표들은 미국에 마약을 보내다가 잡힌 모든 마약상에게 최고형인 사형에 처하겠다고 나한테 말했지만 안타깝게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비롯됐다.
이후 중국은 미국과 협력에 나섰지만 관계가 좋지 않을 때는 협력을 중단하는 등 펜타닐 문제를 양국 관계의 지렛대로 활용해왔다.
중국은 미국의 압력에 지난 2019년 5월부터 모든 형태의 펜타닐을 금지했고, 그 해 양국 법 집행기관은 펜타닐 밀매업자에 대한 공동 수사를 벌여 유죄 판결을 끌어내기도 했다.
이에 중국 화학업체들은 멕시코 마약 밀매 조직에 펜타닐의 원료인 전구체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멕시코 마약조직은 이를 제조한 뒤 밀수를 통해 미국으로 대량 유입해왔다.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해 중국을 계속 압박했지만, 중국은 지난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협력을 중단했다.
펜타닐을 공중 보건 및 국가 안보 우선순위로 여긴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정부가 미국과의 갈등 국면에서 자국 내 마약 관련 업체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후 미국 영공에서 발견된 중국의 ‘정찰 풍선’ 사태와 양국 군사 대화 채널 단절 등으로 미중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협력이 더 요원해졌다.
협력이 재개된 계기는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이었다.
회담에서 중국은 중국에서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유입되는 펜타닐을 막기 위해 펜타닐 원료를 제조하는 화학회사를 직접 단속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미국은 마약 문제 공조를 위한 실무그룹을 구성했고, 중국 공안부는 지난 8월 3가지 펜타닐 전구체에 대한 통제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이에 앞선 지난 6월 펜타닐 전구체에 대한 단속 캠페인을 벌였고, 미국 정보기관 제보에 따라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위해 일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금세탁범을 체포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런 중국의 노력을 환영했으며 미중이 경쟁하면서도 협력이 가능한 분야로 펜타닐을 지목해왔다.
트럼프 당선인의 추가 관세 발표 이후 중국이 지난 26일 “중국과 미국은 광범위하고 심층적인 마약 금지 협력을 수행해 괄목할 성과를 거뒀다”고 반박한 이유는 그간 바이든 행정부와 협력 성과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외교부 마오닝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평등과 상호 이익,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미국과 마약 금지 협력을 계속하길 희망한다”며 “미국은 중국의 선의를 소중히 여기고 중국과 마약 금지 협력으로 어렵게 얻은 좋은 국면을 유지해야 한다”고도 했다.
중국은 자국이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고 철저하게 마약 금지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라면서 펜타닐은 미국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중국이 펜타닐 문제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지원한 것도 인도주의 정신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6일 “중국이 오랫동안 미국 정부의 정책을 탓하며 미국의 펜타닐 위기에 대한 책임을 피했다”면서 “중국은 또 19세기 영국의 착취적인 아편 교역을 지목하며 중국을 마약의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펜타닐 문제에 대한 중국의 더 강력한 대응을 압박하기 위해 관세를 꺼내 들었다고 보지만, 오히려 중국의 협력을 얻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 “무역 전쟁 재개가 중국으로 하여금 (미중 간) 가장 생산적인 외교 채널 중 하나를 폐쇄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