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면이 ‘법과 질서’의 대통령이냐?”

트럼프 ‘금요일밤의 감형’ 후폭풍…백악관서도 “자멸 행위”

공화 롬니 “전대미문의 역사적 부패…”닉슨도 안한 짓 했다”

바이든 “권력 남용, 가치 초토화…시선 피하려 토요일 선택”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관련 혐의로 복역을 앞둔 ’40년지기’ 친구이자 비선 참모 로저 스톤을 감형, 면죄부를 준 것을 두고 워싱턴DC가 벌집을 쑤신 격이 됐다. 이른바 ‘금요일 밤의 측근 구하기’ 사건의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법과 질서'(Law and Order)를 이번 대선의 간판으로 내세워온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개입을 통해 법과 질서를 뒤흔들었다는 논란에 또다시 휘말린 가운데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등 파문이 이어지고 있어 대선 국면에서 뇌관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국면에서 통합보다는 편가르기·분열을 추구하며 대선용 행보에만 골몰한다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 사면·감형권 남용 논란…”닉슨도 넘지 않은 선 넘었다”

10일 밤 전격적으로 이뤄진 감형 결정으로 스톤은 트럼프 행정부의 사면·리스트에 이름을 추가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몇 달간 스톤을 비롯,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폴 매너포트 전 선대본부장 등 ‘러시아 스캔들’ 관련 측근 인사들에 대한 사면 가능성을 내비쳐왔다.

뉴욕타임스(NYT)는 11일 ‘트럼프는 스톤을 감형하면서 닉슨이 가지 않으려고 한 곳까지 갔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잃은 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었다고 말해왔지만, 그의 친구이자 참모인 로저 스톤을 감옥에서 끄집어내려고 대통령직 권한을 사용해 워터게이트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닉슨조차 감히 건너지 못한 선을 넘었다”고 꼬집었다.

NYT는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 자신의 ‘친구’들을 돕기 위해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은 대통령이 바로 닉슨이었다”며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일부 참모들에게 비밀리에 사면을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결국 하야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감형의) 정치적 대가가 그다지 높지 않다고 판단되면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더 대담해질지도 모른다”며 추가 측근 구하기 가능성을 제기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그간 사면 및 감형 대상자 규모가 과도하게 많았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이번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자 그대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데 활용된 범죄를 사면한 경우라는 점에서 ‘측근 사면’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 “백악관 참모들도 ‘자멸’ 경고”…롬니 “전대미문 역사적 부패” 직격탄

NYT에 따르면 지난 몇달 간 백악관의 고위 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스톤에 대한 사면·감형권 행사가 정치적으로 자멸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의 조언을 듣지 않고 침묵을 지킨 우군을 보상하기 위해 ‘선례’와 ‘절제’를 따르지 않은 채 마이웨이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 친트럼프 진영 내부에서 11월 대선을 4개월여 앞두고 이미 역풍에 휩싸인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조치로 인해 정치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NBC방송이 보도했다.

여권인 공화당 내에서조차 공개 비판이 고개를 들었다.

공화당 내 대표적인 ‘반트럼프’ 인사인 밋 롬니 상원의원은 이날 트윗을 통해 “전대미문의 역사적인 부패:미국의 대통령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 배심원의 유죄 평결을 받은 사람의 형을 감형하다”고 맹비판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윗을 통해 스톤이 마녀사냥의 표적이 돼왔다며 ‘러시아 스캔들’ 무력화를 시도하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 팬데믹에는 눈감고 정치행보만…”이번에도 어김없이 금요일밤”

CNN방송은 ‘트럼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눈 감은 채 정치적 불만에 집중하다’는 제목에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의 집중 발병지역인 플로리다를 방문한 데 이어 스톤을 감형한 전날 행보를 되짚은 뒤 “여론조사 수치가 하락하는 이때,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러스를 격퇴할 보다 훌륭한 리더십 역할을 자임하길 거부했다”고 평했다.

이어 CNN은 “대신 그는 자신의 정치적 운명에 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부수적인 일들에 대한 분노와 자기 연민의 사이클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 뒤 이를 ‘주의분산의 정치학’이라고 명명했다.

CNN은 트럼프 행정부가 그간 눈엣가시 경질 등 정치적으로 부담이 있거나 불리한 사안을 발표할 때 여론의 관심 집중을 피하기 위해 주말로 넘어가는 ‘금요일 밤’을 ‘D데이’로 자주 택해왔던 점을 거론, 이번 스톤의 사면이 금요일 밤 이뤄진 것도 그다지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성명을 통해 이번 감형을 트럼프 대통령의 ‘권력 남용 증거’로 규정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규범과 가치들을 초토화하는 과정에서 시선 집중을 피하기 위해 금요일 밤에 감형을 발표했다고 비판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그러면서 “그는 수치심을 모를 것”이라며 “올가을 미국 국민이 투표를 통해 목소리를 낼 때만 그를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번 일을 ‘법치 모독’으로 규정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마피아 두목”, “무법의 대통령” 등의 원색적 표현을 써가며 총공세를 폈다.

WP는 사설에서 “이번 감형은 대통령직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배반”이라며 “미국이 일찍이 봐온 부패한 정부의 편파적 조치 가운데 가장 역겨운 사례”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지난 2월 법원에서 징역 40개월형을 선고받고 나온 트럼프 측근 로저 스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