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역사가 가르쳐준 게 있다면 그것은 생명은 절대 갇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명은 자유를 찾고 새 영역으로 확장하고, 고통스럽고 위험한 장벽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결국은 길을 찾는다.”
1993년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카오스이론을 신봉하는 수학자 이안 맬컴(배우 제프 골드블럼)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공룡의 번식을 막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한 말이다.
실제로 세포 분열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유전자 500개 미만만 가진 인공 박테리아도 환경에 적응해 진화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인디애나대 제이 T. 레넌 교수팀은 6일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서 합성 박테리아 ‘마이코플라스마 마이코이데스 JCVI-syn3B’를 300일간 자유롭게 진화할 수 있는 환경에서 배양하는 실험에서 이들이 돌연변이를 통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마이코플라스마 마이코이데스 JCVI-syn3B는 미국 J.크레이그 벤터 연구소가 2016년 염소 같은 동물의 내장에서 발견되는 ‘마이코플라스마 마이코이데스'(M.마이코이데스)의 게놈에서 유전자 901개 중 자율적 생명 유지에 필요한 유전자 493개만 남긴 합성 박테리아다.
필수 유전자를 제외한 유전자를 제거하는 합성 기법으로 만든 최소 세포에 대해 연구해온 레넌 교수팀은 이 연구에서 유전자가 최소화된 세포도 진화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계획했다.
레넌 교수는 M.마이코이데스 자체도 수천년간 숙주에게 영양을 의존하도록 진화하면서 자연적으로 많은 유전자를 잃었고, 여기에서 더 많은 유전자를 제거한 M.마이코이데스 JCVI-syn3B는 자율 생존이 가능한 최소 생명체라고 말했다.
이어 가장 단순한 이 합성 박테리아는 기능적 중복이 없고 생명에 필수적인 최소 유전자만 가지고 있어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하나 이상의 세포 기능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진화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먼저 M. 마이코이데스 JCVI-syn3B를 자유롭게 진화할 수 있는 실험실 환경에서 300일간 배양했다. 300일은 박테리아가 2000세대를 번식할 수 있는 기간으로 인간 진화로 보면 약 4만년에 해당한다.
다음 단계로 300일간 진화를 거친 M. 마이코이데스 JCVI-syn3B와 원래 버전 박테리아의 환경 적응 능력 비교를 위해 두 균주를 같은 시험관에 넣어 배양하면서 어떤 박테리아가 환경에 더 잘 적응해 살아남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300일간 진화한 박테리아가 원래 버전 박테리아보다 환경에 더 잘 적응해 이른 시간 안에 우점종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300일간 진화한 박테리아는 상대적 적합성으로 평가했을 때 원래 버전 박테리아보다 진화 속도가 39% 빠른 것으로 나타났으며, 세포의 크기도 같은 기간 동일하게 유지된 원래 버전보다 80%가 커졌다.
연구팀은 진화 과정에서 세포 표면 구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등 많은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며 M. 마이코이데스 JCVI-syn3B는 300일간 진화하면서 잃었던 많은 능력을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레넌 교수는 “가장 단순한 생명체의 적응력을 확인한 이 실험은 자연선택 힘과 생명은 길을 찾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생명체를 꼭 필요한 것들로만 단순화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진화가 멈추지는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