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소비자 물가상승 둔화…실업률 반세기만 최저
금융권 불안·부채 한도 상향 등 각종 리스크도 혼재
미국 내 일자리가 늘고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잡히고 있지만 경제 침체 우려는 여전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달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로 촉발된 금융 시스템 위기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미 연방정부 부채 한도 상향 시한이 다가오는 점은 또 다른 리스크로 거론되고 있다.
◇ 인플레 하락세·견조한 고용시장에 경기 낙관론 ‘기지개’
생산자 및 소비자 물가 상승세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이후 가장 느린 속도를 나타내고 있다.
3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2.7% 상승하는 데 그쳤고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여름 9.1%로 고점을 찍은 뒤 5%로 떨어졌다.
반면에 고용 시장은 뜨겁다.
실업률 3.5%는 반세기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여러 지표는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세계 경제를 붕괴시키기 직전인 2020년 2월보다 최근 고용시장이 더 건강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더 많은 미국인이 일하고 있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바탕으로 낙관론 진영에 있는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연착륙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옐런 장관은 CNN과 최근 인터뷰에서 “강한 노동 시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유지하면서 인플레이션을 낮출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노동시장의 강세와 인플레이션 억제가 양립할 수 있는 목표라고 자신했다.
골드만삭스의 이코노미스트들도 “공급과 수요의 재균형이 궤도에 올랐다”며 경기후퇴 가능성을 35%로 예측했다.
◇ 금융권 불안·’부채한도 상향’ 등 복병 산재…여전한 비관론
긍정적인 경제지표에도 비관론은 좀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다.
각종 위험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언제라도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현상은 지난달 SVB와 시그니처은행 붕괴에 따른 금융권의 불안이다.
이 때문에 대출 활동이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
기업이 돈을 빌려 투자에 적극 나서지 않으므로 경기 부진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금융권 내 혼란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공격적 금리 인상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연준 인사들은 추가적인 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로이터통신과 단독 인터뷰에서 현재 4.75~5.00%인 기준금리를 5.50~5.75%까지 올려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는 한 차례 더 0.25%포인트 인상한 뒤 한동안 동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종착점은 다르지만 둘 다 금리 인상 행진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점들 때문에 많은 이코노미스트가 비관론 진영에 확고하게 포진해 있다.
이코노미스트들을 대상으로 하는 블룸버그의 최근 조사는 침체 가능성을 65%로 고수했다.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듯 국제통화기금(IMF)은 “불확실성이 크다”며 지난주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다소 낮췄다.
CNBC 방송은 4월 전미 경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9%가 현재 경제 상황과 향후 1년간 전망에 대해 ‘모두 비관적’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는 해당 여론조사가 실시된 지난 17년간 가장 높은 수치다.
미국 연방정부의 채무불이행(디폴트)을 피하기 위해 오는 6월 초 부채 한도 상향 시한이 다가오는 점도 또 다른 복병이다.
부채 한도 상향이 이뤄지지 않으면 미국 정부가 이르면 7월 채무불이행 사태에 빠져 경제가 붕괴하고 채권과 주식 시장에 치명타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CNN은 “또 다른 시나리오는 경기가 후퇴할 경우 실업률의 큰 폭 상승 없이 가볍고 짧게 지나갈 것이다. 결론은 아무도 확실히 모른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