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아프리카와 유럽을 품은 모로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마주한 모로코는 고대 페니키아 시대부터 아프리카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이슬람교 출현 이후에는 이슬람 세력이 토착 베르베르족과 결합해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왔다. 모로코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스페인을 통해 유럽의 영향도 깊이 받아왔다.

모로코 라바트의 성벽 [사진/성연재 기자] 모로코 라바트의 성벽 

◇ ‘위대한 여행가’ 이븐 바투타의 고향 탕헤르

폭 14㎞의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마주하고 있는 탕헤르에 도착했다.

유럽과 가장 가까운 아프리카의 도시다. 이곳에서 ‘이븐 바투타’라는 이름의 식당을 발견했다.

분명 사람 이름으로 기억되는데 누구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검색해 보니 이븐 바투타(1304∼1368)는 축구 선수 이름도, 아랍 가수 이름도 아니었다.

700년 전 탕헤르 출신의 여행가였다.

탕헤르는 고대 페니키아 시대부터 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관문 역할을 해 온 도시다.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갈 때도,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할 때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었다.

이곳에서 위대한 여행가가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보다 덜 알려졌지만, 이븐 바투타는 그 모험의 여정을 들여다보면 마르코 폴로를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다.

대서양을 접한 탕헤르 [사진/성연재 기자] 대서양을 접한 탕헤르

이븐 바투타는 21세에 메카로 순례 여행을 떠난 이후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이집트, 시리아, 터키 등 이슬람 세계는 물론 인도, 중국까지 그의 발길이 닿았다.

현대의 국경으로 치면 40개국 이상이었고, 그 여정을 길이로 계산하면 12만㎞가 넘는다.

마르코 폴로의 3배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그의 여행 경로를 살펴보면 중국 산둥 지방까지 뻗쳐있다.

기록은 없지만 아마 고려의 벽란도까지 왔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해 본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영화 ‘본 얼티메이텀’을 본 사람이라면 탕헤르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이 영화 곳곳에서 등장한다.

관광객들은 보물찾기하듯 시내 곳곳에 있는 영화 촬영지를 찾아 헤맨다.

우리 일행도 영화에 나오는 곳 중 하나인 파리 카페에 들렀다.

영화에서는 간판이 없었지만, 지금은 ‘카페 파리’라는 간판이 커다랗게 붙어 있다.

노천카페인 이곳에는 나이 지긋한 모로코인들이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모로코의 탑골공원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시간은 촉박했고 앉아서 커피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자리가 나지 않았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한 모로코인이 자리를 양보해주며 마침 배달된 커피 한 잔까지 나눠 준다.

카페라테였는데 무척이나 달고 맛있었다.

대서양을 접한 곳에 헤라클레스가 살았다는 전설의 동굴이 있다.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이곳 주변 해안가에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탕헤르가 미식의 도시임을 알게 해준다.

이곳에서는 유럽과 아프리카적 특성이 적절히 조화된 다양한 요리들을 맛볼 수 있다.

카사블랑카 릭의 카페 [사진/성연재 기자] 카사블랑카 릭의 카페 

◇ 모로코보다 더 유명한 카사블랑카

1942년 제작된 영화 카사블랑카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마이클 커티즈가 감독하고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먼이 주연한 이 영화 덕분에 카사블랑카라는 지명은 모로코라는 국명보다 더 알려져 있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카사블랑카를 배경으로 담아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은 머리 버넷과 조앤 앨리슨이 쓴 소설 ‘모두가 릭의 카페로 온다’를 각색한 영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난민들은 미국으로 가기 위해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지중해와 알제리 오랑을 거쳐 카사블랑카로 온다. 이곳에서 비자를 얻어 리스본으로 간 후에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는 계획이다.

그러나 중간에 돈을 탕진해 카사블랑카에 머물게 되면서 다양한 사건 사고가 벌어진다.

리처드 블레인(험프리 보가트)은 그들을 위해 ‘릭의 카페 아메리카나’를 운영한다.

그러나 촬영 당시 북아프리카에서는 전쟁이 벌어져 실제로 카사블랑카에서는 촬영되지 않았다고 하며, 지금의 카페는 영화가 히트한 뒤에 세워졌다.

카사블랑카 하산2세 모스크 [사진/성연재 기자] 카사블랑카 하산2세 모스크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배경으로 당시 모로코와 주변국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카사블랑카에는 1993년 바다 근처에 건립된 하산 2세 모스크가 있다.

매우 정교하고 섬세한 장식을 갖춘 210m 높이의 첨탑이 있어 인파가 붐비지 않는 시간 한번 찾아가 봐도 좋다.

이 모스크는 알라에 대한 경외심을 표하기 위해 대서양 바다를 메워 지었다.

멀리 바깥에서 모스크를 바라보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모로코 라바트의 우다야 카스바 [사진/성연재 기자] 모로코 라바트의 우다야 카스바

◇ 모로코의 미래를 읽을 수 있는 도시 라바트

카사블랑카와 탕헤르도 오래전부터 번성한 해안 도시지만, 현재 모로코의 정치적 중심은 라바트다.

1912년부터 44년간 모로코를 점령했던 프랑스는 카사블랑카와 탕헤르를 제쳐두고 이곳을 수도로 정했다.

라바트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으며 곳곳에 녹지공간도 많다.

모하메드 5세 국왕의 영묘와 라바트의 상징인 카스바(요새) 등 볼 것들이 많다.

카스바 내부에는 마치 스페인 남부 말라가를 떠올릴 만큼 하얀 집들이 즐비하다.

내부에는 아직도 민간인이 거주하고 있다.

저 멀리 대서양이 내려다보이는 성벽에 서면 가슴이 탁 트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바깥에서 요새를 바라보는 것이다.

페어몬트 호텔 루프톱 카페에서 바라보면 카스바의 모습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메디나(주거지역) 골목에는 다양한 물품을 파는 상가가 줄지어 서 있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민간인 거주 공간이 나온다.

때마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방문해 도시 전체가 들뜬 분위기다.

프랑스의 대규모 경제 원조 소식에 모로코인들은 많은 기대를 하는 모습이다.

과거 식민 지배를 받아온 것에 대한 반감이 없느냐는 질문에 가이드는 일부 불만 세력도 있지만, 의료 체계를 확립해 국민 모두에 의료 혜택을 준 점과 오히려 다른 외세로부터 지켜준 점 등으로 프랑스에 대한 국민감정이 나쁘지 않다는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시내 곳곳에 프랑스 국기와 모로코 국기가 동시에 나부끼고 있었다.

탕헤르에서 라바트를 거쳐 카사블랑카까지 가는 데는 차량으로 5시간이 걸린다.

프랑스가 건설한 모로코산 테제베인 알 보라크를 타면 2시간 남짓이면 도착한다.

2018년 개통된 이 기차는 아프리카 최초의 고속철이다. 우리나라의 KTX와 닮은 듯 다르다.

2층짜리 객차를 쓰는 프랑스의 테제베(TGV) 유로 듀플렉스를 개선한 제품이라고 한다.

마침 객실이 2층이었는데, 무척 쾌적하고 조용했다.

탕헤르-카사블랑카 기준 2등 칸의 가격은 224디르함(약 3만135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