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이 옳았을 수도 있다. 바이든이라면 도널드 트럼프를 꺾을 수도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6일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런 도발적 제목을 단 기사를 홈페이지에 실었다.
뉴스위크는 “전국의 민주당원들이 2024년 선거 패배를 비통해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 다음달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을 받아 선거를 치렀으나 고배를 마셨다.
정치학자 겸 분석가인 스티븐 시어는 “바이든을 (대선후보 자리에서) 몰아낸 것은 민주당 내에서 계속 논란이 많을 것”이라며 “바이든이 비록 인지력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펜실베이니아와 같은 주들에서는 해리스보다 (득표) 실적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트럼프는 5일 치러진 선거에서 펜실베이니아뿐만 아니라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위스콘신, 미시간에서도 이겼다. 애리조나와 네바다는 아직 개표가 마무리되지 않았으나 트럼프가 상당한 폭으로 앞서 있어 7개 주요 경합주들 모두에서 싹쓸이 승리가 유력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2020년에는 이 7개 주요 경합주 중 노스캐롤라이나를 제외한 6개 주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를 따돌리고 승리를 챙긴 바 있다.
전국 총득표로 따져도 이번 선거에서는 트럼프가 해리스에 앞섰다. 대선의 전국 총득표에서 공화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에 앞선 것은 2004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를 꺾은 이래 20년 만이다.
전국 총득표율은 2020년 바이든 51.3%, 트럼프 46.8%였으나 2024년에는 일부 지역 집계가 남은 상태에서 해리스 47.5%, 트럼프 50.8%로 집계되고 있다.
아울러 해리스 부통령은 동부 버지니아주에서도 승리를 챙기긴 했으나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득표율 격차는 5.2%포인트에 불과했다. 이같은 수치는 4년 전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거둔 득표율 격차 10.4%포인트의 절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해리스는 확실한 민주당 우세 주로 꼽히는 뉴저지에서도 트럼프 당선인과의 득표율 격차가 5.0%포인트에 불과했다. 이는 2020년 양자 간 격차(15.9%포인트)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최근 20년간 민주당 대선후보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이다.
7월 21일 대선 레이스 포기를 발표하기 전까지 바이든은 트럼프를 꺾는 데 가장 적합한 후보는 자신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6월 27일 트럼프와의 대선후보 토론을 망치고 나서 후보 사퇴 압력이 커지던 7월에도 방송 인터뷰, 민주당 연방의원들에게 보낸 편지, 기자회견 등에서 이런 견해를 거듭 밝혔다.
뉴스위크는 “트럼프가 2기 임기를 확보했으므로, 바이든이 틀렸다기보다 맞았던 쪽에 가깝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을 이긴 유일한 민주당원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노동조합 구성원들, 남성 집단에서 인기가 높았으나, 해리스는 이 두 집단에서 인기가 낮았고 이 점이 특히 펜실베이니아 패배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수십년간의 정치 경력에서 노조 친화적 태도를 보여왔으며, 작년 가을에는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노조 파업 시위에 동참하기도 했다.
후보 사퇴 전에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 선언을 했던 일부 노조는 해리스 지지 선언은 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노조원들 사이에서 트럼프 당선인 지지 비율이 해리스 부통령 지지 비율보다 오히려 더 높다는 이유였다.
남성 유권자들의 표심도 해리스 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대선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성 유권자들 사이에서 2016년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트럼프에 9%포인트 뒤졌으나, 2020년 바이든은 남성 유권자 집단에서 트럼프와의 격차를 단 2%포인트로 줄이며 선전했다.
이번 선거에는 남성 유권자 사이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에 약 10%포인트 뒤졌다.
특히 백인 남성 집단에서는 23%포인트, 라틴계 남성 집단에서는 12%포인트 뒤졌다.
흑인 남성 집단에서의 민주당 대선후보 득표율은 2020년 바이든 92%에서 2024년 해리스 77%로 낮아졌다.
바이든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해리스 부통령의 경륜이 부족했고, 대선일까지 불과 107일 만에 유권자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킬 수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바이든은 만 29세 때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된 이래 자그마치 52년간 전국 정치무대에서 활동해온 노련한 정치인이며 유권자들에게 매우 친숙한 존재다.
하지만 해리스는 정치경력 대부분을 민주당 지지세가 압도적인 캘리포니아에서 쌓았으며, 본격적 전국 정치무대인 202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투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퇴했다.
CNN 출구조사 분석결과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과 해리스 부통령 양쪽 모두에 비호감을 품은 유권자들 중에서는 결국 56%가 트럼프 당선인에게 표를 줬으며, 해리스 부통령에게 투표한 비율은 30%에 불과했다.
차라리 바이든이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하고 민주당 내에서 치열한 경선이 치러졌더라면 누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됐던지와 무관하게 경쟁력이 훨씬 높았으리라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