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부른 국민테너 박인수 전 서울대 교수 별세

테너 박인수
테너 박인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2일 성악계에 따르면 1980~90년대 국민가요로 불리던 ‘향수’를 가수 이동원(2021년 작고)과 함께 불렀던 성악가 테너 박인수 전 서울대 교수가 지난달 28일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1938년 3남 2녀의 장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유년 시절부터 신문 배달 등을 등을 하면서 고학한 끝에 1959년 서울대 음대에 입학했다.

4학년 때인 1962년 성악가로 데뷔한 뒤 1967년 국립오페라단이 무대에 올린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의 주역으로 발탁됐다.

1970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음악원과 맨해튼 음악원 등지에서 수학했다. 당시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줄리아드 음악원 오디션에도 합격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이후 그는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라보엠’, ‘토스카’, ‘리골레토’ 등 다수의 오페라 주역으로 활약했다.

1983년 서울대 성악과 교수로 부임한 뒤에는 클래식 음악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소신에 따라 대중적인 행보에 나서 ‘향수’를 발표했고 이 노래가 큰 인기를 끌면서 ‘국민 테너’로 불렸다.

시인 정지용이 쓴 동명의 시에 작곡가 김희갑이 곡을 붙인 ‘향수’는 1989년 음반이 발매된 후 현재까지 130만장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다.

지금은 대중가요와 클래식 음악을 접목한 크로스오버가 흔한 장르지만, 이 곡은 클래식과 가요 간의 장벽이 높았던 80년대 말의 한국 음악계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다. 성악가가 대중가요를 불렀다는 이유로 박인수는 당시 클래식계에서 배척을 당하기도 했지만, 이 곡은 그의 이름을 대중에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됐고,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고인은 생전에 한 언론 인터뷰에서 “클래식은 대중음악과 다르다는 고정관념에 위배되는 일을 했기 때문에 파문의 중심에 섰던 것”이라며 “‘향수’를 부르고 나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졌고, 사람들의 인생을 다양하게 이해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국내외에서 독창회는 2천회 이상, 오페라에는 300회 이상 주역으로 무대에 섰고, 2003년 서울대에서 퇴임한 뒤에는 백석대 석좌교수와 음악대학원장을 맡았다. 2011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안희복 한세대 음대 명예교수, 아들 플루티스트 박상준 씨가 있다. 장례 예배는 LA 현지에서 3일 오후 6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