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9 April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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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맨친 접촉뒤 IRA보조금 대상…한국, 골든타임 놓쳐

한국에서 가장 ‘핫(hot)’한 인터넷 매체인 뉴스버스(대표 이진동)에 본보 이상연 대표가 매주 미국 정치 및 외교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 칼럼을 전재한다./편집자주

미국 연방 의회 상대 각국 정부 물밑 로비전 상상 초월

캐나다, 맨친 의원 접촉 뒤, 보조금 대상 미국공장→북미공장

IRA 상원 통과까지 열흘 골든타임, 한국정부 로비했더라면…

로비업체 고용이 문제가 아니라, 도움 받고도 일 못한 정부가 문제

미 의회 상대 로비 외교 일부…국가정상·정부외교 보조 수단일 뿐

실제 미국 연방의사당 로비. (사진=위키미디어)
실제 미국 연방의사당 로비. (사진=위키미디어)

사우디 아라비아의 미국 의회 대상 로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집요하고, 그 규모 면에서도 다른 나라를 압도하고 있다. 최근 자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사우디 정부는 지난 2015년과 2016년 2년간 미국 로비스트 145명을 고용해 총 1,800만달러(한화 약 250억원)를 지불했다. 같은 기간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인 구글이 700만달러를 로비에 사용했으니 사우디의 로비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사우디 정부는 이같은 로비를 통해 9.11테러 피해자들이 사우디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구체적인 외교현안을 챙기는 한편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까지 성사시켰다. 사우디 정부의 로비 예산은 바이든 정부 출범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1억달러 이상을 사용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사우디 정부는 이같은 물량 공세를 통해 양국의 외교 경색을 풀고,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까지 이끌어 냈다.

한국 정부가 올해 23억원, 미화로는 약 160만달러의 예산으로 미국 로비업체를 고용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사실 사우디 정부의 로비 자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작은 규모일지라도 돈을 들여 로비업체를 고용하지 않으면 현재의 외교 인력이나 자원으로는 미국 의회의 입법 움직임과 행정부의 정책 변화 등을 제대로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로비스트들의 능력만으로 외교의 성공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사우디는 로비스트들이 제공한 정보와 전략을 바탕으로 정부가 직접 나서 필요한 행사에 돈을 풀고 필요한 사람을 포섭하는 일을 맡는다. 사우디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트럼프 호텔의 객실 500개를 한꺼번에 에약하기도 했다. 이처럼 로비스트들이 아무리 좋은 정보를 제공해도 국가 정상이나 외교관들이 나서지 않으면 마무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로비스트들을 고용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들의 도움을 받고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 잘못된 점이다.

그렇다면 미국만의 로비 문화는 어떤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일까? 미국 헌법은 모든 국민이 정부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청원(petition)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이같은 청원이 합리적이라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법률로 채택하거나 정부 정책에 반영할 의무가 있다. 로비스트들은 “많은 사람들이 법적 권리인 청원을 위한 시간이나 자원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헌법에 보장된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존재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직 고위 관료나 거물 정치인들이 로비스트로 나서면서 ‘전관예우’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고, 이들이 국민들의 이익 대신 ‘큰 손’인 외국 정부나 특정 대기업 등의 이익만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로비스트들의 영향력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더욱 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한 비즈니스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각종 구제법안이 추진되면서 각 업종을 대표하는 이익단체들은 더 많은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로비업체들을 앞다퉈 고용했다. 이같은 로비의 결과로 식당업계와 호텔업계, 영화관련 업계 등이 거액의 정부 지원금을 받게 됐고, 로비업체로 인해 국민의 혈세가 낭비됐다는 비판도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바이든 대통령과 인사하며 '48초 환담'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바이든 대통령과 인사하며 ’48초 환담’을 하고 있다. 

이같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로비스트들은 법안의 세부조항 발의나 수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번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보조금 조항을 만든 조 맨친 상원의원(민주) 역시 미국 자동차 업계의 로비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캐나다 정부가 맨친 의원과 접촉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오비이락’인지, 보조금 지급 대상이 ‘미국 공장’에서 캐나다와 멕시코를 포함하는 ‘북미 공장’으로 막판에 수정됐다.

한국 정부도 지난 7월 27일 최종안 공개 후 8월 7일 상원 통과 때까지 10일간의 ‘골든타임’ 동안 맨친 의원이나 현대차 공장이 들어서는 조지아주 지역구의 상원의원 2명(존 오소프, 라파엘 워녹)에게 적극적인 로비를 펼쳤더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