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으로 물든 시카고강…정상화 ‘신호탄’

‘성 패트릭의 날’ 60년 전통행사…작년에는 코로나로 무산

시카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시카고강이 진한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처음 전파한 수호 성인 패트릭(386~461년)을 기리는 ‘성 패트릭의 날'(St.Patrick’s Day·매년 3월 17일)을 맞아 시카고시가 ‘조용히’ 추진한 연례행사다.

시카고시는 매년 성 패트릭 데이를 앞둔 주말, 수많은 인파가 모인 가운데 시카고강을 초록색 물감으로 염색하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올해 행사는 다소 특별하다.

작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해 시카고강 물들이기 행사를 포함해 매년 100만 명 이상을 불러 모으던 성 패트릭 데이 기념 축제 일정이 목전에서 전면 무산됐고, 이후 대규모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올해도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로 유서 깊은 기념 퍼레이드 등 대부분 행사가 취소됐으나, 시카고강 물들이기 전통은 공식 발표도 없는 ‘깜짝 행사’로 진행됐다.

시 당국은 “인파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행사 계획을 알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시카고시는 행사 전날 “성 패트릭 데이 축제 주간, 식당과 술집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공지하면서도 강 물들이기 행사는 언급하지 않았고, 일부 언론은 “퍼레이드와 함께 시카고강 염색 행사도 취소됐다”고 보도하는 등 혼선을 빚었다.

로리 라이트풋 시장은 최근까지도 “올해도 시카고강 염색 행사 계획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13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성 패트릭 데이 축하인사를 한 후 “비록 다 같이 모이지는 못했지만, 일부 전문 요원들의 수고에 힘입어 시카고강을 초록색으로 물들이는 우리의 오랜 전통을 이어가게 됐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이어 “초록물이 든 시카고강을 보기 위해 시내에 나올 계획이 있다면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달라”고 당부했다.

배관공 노조인 ‘시카고 플러머 유니언'(CPU) 소속 회원들이 도심에 사람들이 모이기 전인 오전 7시께부터 배를 타고 시카고강을 따라 돌며 강물에 초록색 염료를 뿌렸고, 20여 분 만에 강은 완전히 초록색으로 변했다.

시카고 트리뷴은 “시카고 강둑을 빽빽이 메운 인파도, 환호 소리도 없었지만 코로나19 정상화를 향한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성 패트릭 데이에 시카고강을 초록으로 물들이는 전통은 1962년부터 계속돼왔다. 오렌지 파우더를 원료로 하는 이 초록색 물감의 제조방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미국 내 아일랜드계 인구는 약 3200만 명으로 아일랜드 인구(690만 명)의 5배에 달하며, 시카고는 미국에서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를 만끽하기에 가장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

초록색으로 물들여진 시카고강 [AF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