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기피하는 한국 대학가…”정치 입문 총학 보이콧”

정치 성향 드러내면 총학생회 선거 낙마하기도

요즘 한국 대학가에서는 운동권 총학생회가 기피 대상이 됐다.

이러한 운동권 총학생회(이하 총학) 보이콧 현상은 과거 운동권 출신들이 장악했던 대학 총학생회의 전성기를 생각하면 전혀 다른 분위기다.

지난 2월 전남대학교 제52대 총학생회는 ‘민족전대’ 문구가 담긴 현판을 사용해 운동권 출신 총학생회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학내 익명 커뮤니티에는 현 총학생회가 취임 이후부터 총학생회실 입구에 ‘민족전남대학교총학생회’라는 현판을 내건 것을 비판하며, 현 총학생회의 운동권 여부에 대한 해명을 촉구하는 글들이 빗발쳤다. 일부는 총학생회장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전남대학교 광주캠퍼스 모습
전남대학교 광주캠퍼스 모습 조서연 인턴기자 촬영 [재판매 및 DB 금지]

 

전남대학교 학생 A씨는 “학생을 대표하는 총학생회가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온 ‘민족전대’라는 슬로건을 고른 이유가 의문”이라며 “총학생회는 그 지위와 권한에 걸맞은 신중한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윤중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은 “(민족전대 문구가 사용된) 해당 현판은 현 총학생회가 제작한 것이 아니라 지난 1월 총학생회실 물품 정리를 하다가 발견해 사용하게 됐다”며 “총학생회는 운동권과 같은 특정 이념을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 남은 임기 동안 실망과 불신을 회복하고 믿음직한 총학생회가 될 것”이라고 사과했다.

염민호 전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민족전대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 열사를 중심으로, 독재와 반민주에 대항하기 위해 민주 의식을 제고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문구”라며 “민주화의 상징인 전남대학교 학생들의 열의가 반영된 것이지, 운동권이라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학 총학생회의 운동권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오늘 내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 총학생회 이력은 정치 입문의 발판이 될 수 있어, 특정 정당과의 유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혹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이화여대에서는 2020년 11월 선거에 출마한 총학생회 후보가 특정 정당 소속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선거가 무효처리되는 일이 발생했다.

서강대에서도 지난해 12월 총학 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특정 정당의 정치 캠프에서 일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비난 여론을 잠재우지 못하고 사퇴한 바 있다.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어느 정당에도 가입하지 않으며, 어떤 정치적 성향도 드러내지 않을 때 학교를 위해 봉사하고자 선거에 출마했다는 순수성을 인정받는 분위기다.

정치 입문을 목적으로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광주 소재 대학 졸업생 B씨는 “대학교 총학생회가 정치 성향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며 “총학생회의 역할은 다양한 공약을 수행하며 학교를 활기차게 만들고 학생사회의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민주화와 정의의 상징이었던 운동권 총학생회가 현재 퇴진해야 할 존재가 된 것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어진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염민호 교수는 “1970~1990년대에는 공동체 의식이 강했지만 2000년대에 들며 민주주의와 공동체 의식이 옅어지고 자기 삶에 보탬이 되는 것만 중요해졌다”며 “학생자치단체를 바라보는 시각도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하면서 비판적 시각이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염 교수는 “시민이자 주권자인 대학생이 정치 성향을 지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다만 총학생회는 학생 이익을 대변하는 자치 조직이므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