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EU와 ‘진짜’결별…브렉시트 ‘총정리’

영국, 2016년 6월 EU 탈퇴 결정…4년반 만에 종지부

올해 1월말 브렉시트 단행…11개월간 전환기간 설정

무역협정 포함 미래협상 난항…’노 딜’ 눈앞 극적타결

영국은 지난 1월 말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를 단행했다.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이를 결정한 지 3년 7개월 만이었다.

그러나 브렉시트로 인한 혼란을 피하고자 모든 것을 이전 상태로 유지하는 전환(이행)기간을 설정하는 바람에 당장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전환기간이 완료되는 올해 말 ‘진짜’ 브렉시트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영국이 실질적으로 EU를 떠나면 어떤 변화가 발생할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이같은 상황에서 양측이 미래관계 협상 타결점을 찾지 못하자 사실상의 ‘노 딜'(no deal) 브렉시트로 인한 충격 우려가 커져 왔다.

합의와 결렬 갈림길에 선 양측은 그러나 24일(현지시간) 전환기간 이후 적용할 새 미래관계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양측은 오랜 동거를 끝내고 마침내 내년 1월 새 출발 하게 됐다.

◇ 국민투표로 브렉시트 결정…영국 사회 분열 드러내

영국은 지난 2016년 6월 23일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했다.

당시 국민투표에는 전체 유권자 4천650만명 중 72.2%가 참가해 51.9%인 1천740만명이 ‘EU 탈퇴’에, 48.1%인 1천610만명이 ‘EU 잔류’에 표를 던졌다.

예상치 못한 브렉시트 결정 배경은 복합적이다.

영국은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했다. 그러나 영국은 기본적으로 유럽 공동체에 대한 신념이 약한 데다, EU를 사실상 독일이 주도하는 데 대한 불만도 가지고 있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영국이 EU를 떠나야 문화와 독립성, 세계 속의 위상 등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울러 제3국과 자유롭게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 영국이 더 번영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가운데 브렉시트 국민투표 개최를 결정한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의 책임을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당초 국민투표에서 EU 탈퇴 결과를 예측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캐머런 총리의 의도나 바람과는 달리 국민투표는 영국 사회의 세대와 지역, 계층 간 불화를 드러내면서 EU 탈퇴 결정으로 이어졌다.

◇ ‘구원투수’ 메이 총리 EU와 협상 지휘…의회 반대 못 넘어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는 캐머런 총리의 사퇴로 이어졌고, 테리사 메이 총리가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철(鐵)의 여인’ 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에 나온 영국의 여성 지도자였다.

메이 총리는 2017년 3월 29일 EU의 헌법격인 리스본 조약에서 탈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50조를 발동했다.

50조 1항은 ‘모든 회원국은 자국의 헌법규정에 의거해 EU 탈퇴 결정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50조 3항에는 ‘탈퇴협정 발표일 혹은 탈퇴 통보 후 2년 경과시점부터 리스본 조약 효력이 중단된다. 단, 회원국 만장일치 시 탈퇴 통보 후 주어지는 기간(2년) 연장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다.

이에 따라 영국과 EU는 공식 통보일로부터 2년간 탈퇴에 관한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만약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통보일로부터 2년 후인 2019년 3월 29일 23시(그리니치표준시·GMT)를 기해 영국은 자동으로 EU에서 탈퇴할 예정이었다.

영국과 EU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후 약 2년 5개월(29개월), 양측이 브렉시트 협상을 시작한 지 약 1년 5개월(17개월) 만인 2018년 11월 협상을 마무리했다.

브렉시트 합의안은 크게 EU 탈퇴협정과 ‘미래관계 정치선언’ 등 두 부분으로 구성됐다.

EU 탈퇴협정은 브렉시트 전환(이행)기간, 분담금 정산, 상대국 국민의 거주권리 등 ‘이혼조건’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미래관계 정치선언’은 브렉시트 이후 진행될 미래관계 협상의 기본토대에 관한 것으로, 무관세와 양적제한 없는 경제적 파트너십 보장, 상품교역 자유무역지대 조성을 위한 포괄적 준비, 단기 여행 시 비자 면제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은 의회에서 번번이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됐다.

EU 탈퇴협정 중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안전장치'(backstop)였다.

‘안전장치’는 영국과 EU가 미래관계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국경을 엄격히 통제하는 ‘하드 보더'(hard border)를 피하고자 영국 전체를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전장치’는 종료시한이 없는 데다, 영국 본토와 달리 북아일랜드만 EU의 상품규제를 적용하게 돼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와 사실상 보수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온 북아일랜드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DUP)이 모두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영국이 관세동맹에 잔류하면 제3국과 자유로운 무역협정 체결이 제한돼 EU 탈퇴 효과가 반감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국 ‘노 딜’ 브렉시트 우려가 커지자 메이 총리는 EU 측에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했고, 브렉시트는 두 차례 연기 끝에 지난해 10월 31일로 미뤄졌다.

이에 급격히 리더십이 약화된 메이 총리는 결국 사퇴를 결정했고,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EU 탈퇴 진영을 이끌었던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이 경선 끝에 총리직을 승계했다.

◇ 존슨 총리, 조기총선 승부수 통하며 브렉시트 단행

지난해 7월 취임한 존슨 총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10월 말 브렉시트를 단행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 예정일을 2주가량 앞둔 지난해 10월 중순 EU 특별정상회의 직전 EU와 극적으로 재협상 합의에 성공했다.

존슨 총리는 기존 합의안에서 가장 큰 반발이 제기된 ‘안전장치’를 폐지하는 대신, 북아일랜드를 실질적으로 EU 관세 및 단일시장 체계에 남겨두는 방안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10월 말로 설정됐던 브렉시트는 올해 1월 31일로 3개월 추가 연기됐다.

그러나 브렉시트 재협상 합의안 역시 잇따라 하원의 벽에 가로막히자 존슨 총리는 결국 조기 총선 카드를 빼 들었다.

이미 집권 보수당은 하원 과반 기준에 못 미치는 의석수로 인해 브렉시트를 포함한 각종 정책 추진 동력을 상실한 상황이었다.

약 100년만에 12월에 열린 조기 총선에서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은 650석 중 365석 확보라는 압승을 거뒀다.

이를 바탕으로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 EU 탈퇴협정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모든 입법절차를 완료한 뒤 지난 1월 31일 오후 11시 브렉시트를 단행했다.

◇ 9개월간 무역협정 협상 벌여…막판 합의로 ‘노 딜’ 피해

브렉시트 후 한숨을 돌린 영국과 EU는 지난 3월부터 다시 무역협정을 포함한 미래관계 협상에 돌입했다.

기존 EU 탈퇴협정이 ‘이혼조건’에 관한 것이었다면, 미래관계 협상은 양측이 이혼 후 어떤 새 관계를 맺을지에 관한 것이 주 쟁점이었다.

양측은 EU 탈퇴협정 때와 마찬가지로 미래관계 협상에서도 자국 이익을 위해 한 치의 양보 없는 팽팽한 대립을 이어갔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브렉시트가 당초 예정됐던 2019년 3월 29일에서 10개월가량 연기되면서 전환기간 역시 대폭 짧아졌다.

11개월 남짓한 전환기간에 무역협정을 포함한 안보, 교통, 어업 등 모든 것을 망라한 미래관계 협상을 마무리짓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각국의 여행제한 및 봉쇄조치, 협상 당사자들의 확진 등으로 양측은 지난 3월 이후 한동안 대면협상을 하지 못하면서 협상에 차질을 빚었다.

협상 재개 이후 브렉시트 전환기간 종료를 열흘도 채 남겨놓지 않은 최근까지 양측은 공정경쟁환경(level playing field)과 영국 수역에 관한 접근권, 분쟁 해결 메커니즘 등 3개 쟁점을 놓고 이견을 이어갔다.

영국이 아무런 무역협정 없이 EU를 떠나는 사실상의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코로나19로 충격을 받은 세계 경제에 ‘노 딜’ 브렉시트라는 또 하나의 충격파가 던져질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양측은 데드라인을 수 차례 연장해가면서 합의에 대한 희망을 이어갔고, 마침내 전환기간 종료를 일주일 앞두고 24일 역사적인 협상 타결에 도달했다.

영국이 47년 간 이어진 EU와의 동거 생활을 끝내고 새 출발을 확정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