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대회 같던 주파수 경쟁 바꿨더니 ‘노벨상’

2020년 노벨 경제학상, 밀그럼·윌슨 교수 공동수상

경매이론 개발…90년대 이후 공공입찰 활성화 기여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우리 주변의 경매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한 두 미국 학자에게 돌아갔다.

경매는 보통 일반인들과 동떨어진 거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출과 전력, 주파수, 탄소배출권 등 일상에서 접하는 많은 요소가 경매를 통해 시중에 풀리곤 한다.

특히 두 사람의 이론은 각국 정부가 소위 ‘공공 입찰’을 활발히 여는 데 많은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이번 수상은 자칫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제 이론이 실제 현실을 바꾼 대표적인 사례라는 분석이 나온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12일(현지시간) 폴 밀그럼과 로버트 윌슨 미 스탠퍼드대 교수를 202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호명했다.

기본적으로 두 교수는 현실의 경매가 어떠한 역동으로 이뤄지는지에 관한 ‘경매이론’을 연구한 학자다.

이로써 기존 경매이론을 개선시켜, 우리 주변의 다양한 경매를 효과적으로 설계하는 데 주요한 통찰력을 제공했다.

노벨위원회는 “두 사람의 이론은 통상적인 방식으로는 팔기 힘들었던 주파수 같은 상품을 사고팔 새로운 경매 틀을 만들어 냈다”면서 “이로써 전 세계 판매자와 구매자에 이어 납세자까지 혜택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예술품과 다른 주파수…승자의 저주 ‘왕왕’

경매 이론에 따르면 경매 물품은 객관적 가치를 가졌는지 여부에 따라 개인 가치와 공통 가치 물품으로 나뉜다.

노벨위원회는 개인 가치 물품을 설명하면서 뭉크의 ‘절규’ 작품을 예시로 들었다. 주로 예술품처럼 객관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이 느끼는 가치가 각기 다른 경우다.

반면 공통 가치란 분명 객관적 가치가 존재하는데 누구도 이를 정확히 모르는 경우다. 채굴권이 대표적이다.

윌슨 교수는 이 ‘공통 가치’를 처음 파헤쳐 이론화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1969년 유명한 ‘채굴권 연구'(the mineral-rights model)를 발표했는데, 이 연구에 따르면 원유 채굴권 같은 공통 가치 물품을 경매로 따내려는 이들은 이른바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를 피하고자 자신이 실제 생각하는 물품 가치보다 낮은 가격을 적어낸다.

또 물품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크면 클수록, 응찰자들은 조심스러워지고 최종 낙찰가는 낮아진다.

흥미로운 점은 공통 물품 경매에서는 정보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일 수록 물품에 대한 과대 평가를 통해 승자의 저주에 걸리기 쉽다는 점이다.

다른 이들에 비해 정보가 부족한 응찰자는 승자의 저주를 최대한 피하려고 희망 가격을 더더욱 낮게 적어내기 마련이고, 아예 발을 빼기도 하니 말이다.

◇경매 낙찰가, ‘경매 방식’이 결정한다

문제는 이러한 공통 가치와 개인 가치가 무자르듯 딱 나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집을 경매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이 때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집의 가치가 가정 형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집 자체의 객관적인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

이럴 때 경매 참여자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이론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이를 1980년대에 해결한 학자가 바로 밀그럼 교수다.

밀그럼 교수의 연구는 경매에 관해 매우 중요한 통찰을 담았다. 바로 경매 방식에 따라 경매 참여자들의 행동 양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응찰자들이 경쟁적으로 최고가를 부르는 영국식 경매에서는 입찰이 진행될 수록 정보가 노출되므로 승자의 저주를 향한 공포심이 줄어든다.

반대로 점차 가격을 낮춰가는 네덜란드식 경매라면 아무런 정보도 노출되지 않으니, 낙찰가는 영국식보다 더 낮게 형성된다.

◇’94년, 공공입찰의 시작…공공재 배분↑

두 학자는 실제 복잡한 현실에서 효과적인 경매 방식을 설계해 낸 공로도 인정받았다.

1990년대 미국 정부는 주파수 대역을 민간 기업에 할당하는 데 골치를 썩고 있었다.

주파수란 한정된 자원인 데다, 사회 전반에 아주 큰 가치를 지닌 것이었으나, 어느 대역을 어떤 통신사에 할당할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이전까지 주파수 할당은 마치 ‘미인대회’ 같았다는 게 노벨위원회 설명이다. 주파수 대역을 무료로 빌리고자 하는 통신사들은 왜 자신들이 해당 대역을 써야 하는지, 설명을 늘어놔야 했다.

이는 통신사와 방송사가 정계 로비에 천문학적인 돈을 썼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작 주파수 할당으로 창출 가능한 수익은 제한돼 있었는데도 말이다.

1990년대 미디어 붐까지 겹치며, 미 의회는 주파수 대역을 ‘추첨’을 통해 할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민간 기업에 불행한 일이었다. 각 기업이 서로 필요한 주파수 대역을 사고파는 일까지 발생했다.

결국 1993년 미국 정부는 ‘경매’를 통해 주파수 대역 이용권을 팔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엔 경매 방식을 어떻게 설계할지가 문제였다.

이때 밀그럼과 윌슨 교수의 연구는 현명한 대안의 기초가 됐다. 바로 동시오름입찰(SMRA) 방식이다.

SMRA는 여러 주파수 대역을 놓고 1회 이상의 입찰(라운드)을 거쳐 낙찰자를 결정한다. 특정 라운드에서 한 대역의 최고가 입찰자가 되면, 그 다음부터는 해당 대역에서 다른 최고 입찰자가 나타날 때까지 어느 대역에도 입찰할 수 없다.

입찰 방식이 단순하고 불확실성이 낮아, 승자의 저주를 걱정할 일이 적다.

1994년 7월 미국은 마침내 SMRA 방식을 채택한 첫 경매를 열었고, 47회 입찰을 거친 뒤 총 10개의 주파수 대역 이용권을 판매했다. 이전까지는 거의 공짜던 이용권이 당시 돈으로만 6억1700만달러(약 7096억원)를 벌어들였다.

노벨위원회는 “이러한 새 경매 방식의 발견은 기초 학문이 사회에 이로운 발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예시”라며 “이로써 두 학자의 경매 연구는 사회 전체에 이익을 안기게 됐다”고 덧붙였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 왼쪽이 폴 밀그럼 미 스탠퍼드대 교수, 오른쪽이 로버트 윌슨 미 스탠퍼드대 교수. AFP=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