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군부 ‘반기’…꼬리 내린 트럼프

밀리 합참의장, “헌법, 집회의 자유 보장하라” 서신

매티스 전 국방 “트럼프, 국민 분열시키는 대통령”

트럼프 “항의 시위에 군사력 투입할 필요 없을 것”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3일 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 진압을 위해 현역 군 병력이 투입돼선 안된다면서 군 통수권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 에스퍼 장관뿐만 아니라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과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도 반란(?)에 동참했다.

◇ 합참의장,  “집회의 자유 보장” 지시

에스퍼 장관은 이날 국방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 집행에 현역군을 동원하는 건 최후의 수단으로,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상황에서만 사용돼야 한다. 우린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며 사실상 대통령에게 항명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대국민 연설에서 각 시장과 주지사들은 “폭력이 진압될 때”까지 “압도적”으로 공권력을 동원해야 한다면서, 이들이 이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신속한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군(정규군)을 투입할 것”이라고 위협한 바 있다.

현역 군서열 1위인 마크 밀리 합참의장도 주요 지휘관에게 보낸 서신에서 “모든 미 군인들은 헌법을 지키고 수호하겠다는 맹세를 한다”면서 헌법은 “미국인들에게 표현의 자유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부여한다”며 현역병 투입에 반대 의사를 에둘러 표현했다.

이어 “합참의 일원으로서, 귀하는 우리 헌법의 이상을 구현해야 한다. 모든 병과 지휘관은 우리나라의 가치를 수호하고, 법률과 우리 스스로의 높은 행동기준에 부합되게 작전을 수행한다는 점을 상기하길 바란다”고 적었다.

◇ 트럼프 대통령, 에스퍼 장관 질책

에스퍼 장관과 밀리 의장은, 평화적으로 시위들 하던 사람들이 강제 해산된 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지난 1일 백악관 인근 세인트존 교회까지 걸어갔다는 이유로 퇴역 군 장성들로부터 강도 높은 비난을 받은 이후 입장을 바꾼 것 같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에스퍼 장관은 당초엔 대통령의 입장을 지지한 것으로 보였다고 NYT는 전했다. 앞서 에스퍼 장관은 지난 1일 백악관에서 진행한 주지사들과 화상회의에서 “(병력을) 집결시켜 전투공간(battlespace)을 빨리 장악하면 할수록, 더 빨리 (시위대가) 소멸되고, 우리는 올바른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에스퍼 장관은 이날 국방부 기자회견에서 “교회에 간다는 건 알았지만 사진 촬영을 할 줄은 몰랐다. 정치적으로 보일 수 있는 상황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게 성공하지 못할 때도 있다”고 입장을 설명했다.

이날 회견 발언에 화가 난 트럼프 대통령은 에스퍼 장관을 백악관으로 불러 호되게 질책했다고 NYT는 전했다. 또 공화당의 한 고위 소식통은 CNN에 “에스퍼 장관을 둘러싼 긴장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리더십 없는 3년의 결과, 목격”

퇴역 장성에게서도 공개적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2018년 말 대통령의 시리아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사임한 뒤 정부에 대한 입장 표명을 삼갔던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은 대통령이 국가를 분열시키고, 미국 국민들의 헌법적 권리를 위반할 것으로 군에 명령하고 있다며 성토했다.

해병대 4성 장군 출신인 매티스 전 장관은 ‘단결이 힘이다(In Union there is Strength)’라는 제목의 미 시사 잡지 ‘디 애틀랜틱’ 기고문에서 “이번 주 펼쳐지고 있는 일들을 지켜보면서 분노했고, 또 오싹했다”고 글을 시작했다.

미국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퇴역 군인인 그는 “‘법 아래 평등한 정의’라는 글귀가 연방대법원 건물에 새겨져 있다. 이게 시위 참가자들이 마땅히 요구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고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에 지지 입장을 밝혔다.

매티스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인들끼리 서로 등을 돌리게 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내 생애에서 미국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지 않는, 그런 시늉도 하지 않는 첫 대통령이다”며 “그는 우리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3년에 걸친 이 고의적 노력의 결과를 목격하고 있다. 우리는 성숙한 리더십이 없는 3년의 결과를 목격하고 있다. 우리는 시민 사회에 내재된 힘에 의지해, 그가 없이도 단결할 수 있다”고 미국 국민들을 격려했다.

◇ 매티스 트럼프 작심 비판

또 “내가 약 50년 전, 입대했을 때 나는 헌법을 지지하고 수호하겠다고 맹세했다. 나는 똑같은 맹세를 한 군이, 어떤 상황에서도, 시민들의 헌법적 권리를 위반하라고 명령받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작심 비판했다.

‘디애틀랜틱’은 매티스 전 장관은 전직 장성과 관료가 현직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비생산적이며 군의 무정파 성격을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간 침묵을 지켜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들불처럼 번진 시위에 이에 대해 대통령이 밝힌 강경 진압 방침을 듣고 생각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트럼프 입장 급선회 

전현직 국방장관의 항명이 이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재빨리 태도를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보수 성향 케이블매체 ‘뉴스맥스’ 소속 숀 스파이서와의 1대 1 인터뷰에서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항의 시위에 군사력을 투입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파이서가 폭력 시위가 벌어지는 도시에 군을 투입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자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바로 전일 트럼프 대통령은 주지사들이 폭력사태를 진압하지 못할 경우, 정규군을 투입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오른쪽부터),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이 지난해 11월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예방을 위해 대기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