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약속’ 지키지 못하고…하늘의 별이 된 월드컵 스타 유상철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이끌고 ‘올스타’ 선정된 멀티 플레이어

한쪽 눈 사실상 실명 상태로 선수 생활·코뼈 골절에도 골 넣어’

지도자로도 활발히 활동…마지막 팀 인천은 투병 중 1부 지휘

'한일 월드컵 영웅' 유상철 전 감독 별세

(서울=연합뉴스) 2002년 한일 월드컵 영웅인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췌장암 투병 끝에 7일 숨졌다. 향년 50세.

췌장암 투병 끝에 7일 오후 향년 50세에 세상을 떠난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은 성인 국가대표로만 124경기에 출전하며 한국 축구의 대표적인 멀티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린 ‘레전드’다.

1994년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고 프로 생활을 시작하고 그해 A매치에도 데뷔한 그는 일찌감치 유럽 무대에서도 통할 만한 재목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키 183㎝의 탄탄한 체구에서 비롯된 강철 체력은 물론 골 감각과 헤딩, 수비 능력 등을 두루 갖춰 필드 플레이어의 웬만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3차전 동점골, 2002 한일 월드컵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추가골 등 태극마크를 달고도 굵직한 득점들을 남겼다.

유상철 전 감독, 췌장암 투병 끝에 별세

(서울=연합뉴스)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7일 별세했다. 향년 50세. 사진은 2002년 6월 22일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한국-스페인 8강전에서 히딩크 감독의 격려를 받는 유상철.

한일 월드컵 이후엔 대표팀 주장을 맡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엔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8강 진출에 기여했다.

프로 선수로는 울산 외에 일본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과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 맹활약한 그는 2006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K리거로는 울산에서만 뛰며 통산 142경기 37골 9도움을 남겼다. 일본 무대에선 특히 요코하마에서 4시즌을 뛰며 2003·2004년 리그 2연패 등에 힘을 보탰다.

선수 생활 동안 그는 ‘팔방미인’이자 ‘투지의 아이콘’으로도 유명했다.

2001년 6월 월드컵 전초전으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 때 멕시코를 상대로 후반 헤딩 결승골을 넣어 한국의 2-1 승리를 이끌었는데, 전반 경기 중 상대 선수와의 경합에서 코뼈가 부러진 가운데 풀타임을 소화한 게 뒤늦게 알려질 정도였다.

은퇴쯤엔 왼쪽 눈이 거의 실명된 상태로 선수 생활을 했다고 밝혀 또 한 번 팬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한일 월드컵 영웅' 유상철 전 감독 별세(서울=연합뉴스) 2002년 한일 월드컵 영웅인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췌장암 투병 끝에 7일 숨졌다. 향년 50세. 인천 구단에 따르면 유 전 감독은 이날 오후 7시께 서울 아산병원에서 사망했다. 유 전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사진은 2019년 11월 30일 경남 창원시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1(1부리그) 경남FC-인천유나이티드 경기에서 무승부로 1부 리그 잔류를 확정한 뒤 코칭스태프와 포옹하는 유상철. 

은퇴 이후 유 전 감독은 방송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서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며 대중에 한층 친근하게 다가갔는데, 당시 지도를 받은 대표적인 선수가 한국 축구의 미래로 성장한 이강인(발렌시아)이다.

2009년 춘천기계공고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1년 대전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을 맡아 프로 사령탑으로 데뷔, 이듬해까지 지휘했다.

2014년부터는 울산대 감독으로 경험을 쌓은 그는 2018년 전남 드래곤즈의 부름을 받아 프로 무대에 복귀했으나 8개월 만에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2019년 5월 부임한 인천은 ‘축구인 유상철’이 몸담은 마지막 팀이 됐다.

최하위권을 맴돌던 인천의 1부 잔류라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매 경기 살얼음판 같은 생존 경쟁을 치러야 했다.

시즌이 막바지이던 그해 10월 황달 증세로 입원한 유 전 감독은 11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고 구단 소셜 미디어로 직접 밝혔다.

2019년 11월 30일 경남전에서 1부 잔류 확정한 뒤 유 전 감독 등 인천 선수단
2019년 11월 30일 경남전에서 1부 잔류 확정한 뒤 유 전 감독 등 인천 선수단[연합뉴스 자료사진]

선수 시절 그라운드에서 불태운 혼은 벤치에서 ‘열정의 리더십’으로 승화했다. 그는 병마와 싸우며 1부 생존을 위한 경쟁도 놓지 않았다.

당시 인천의 ‘잔류 드라마’는 팀을 이끄는 유 전 감독의 상황과 맞물려 더 극적으로 펼쳐졌다.

K리그 현장은 물론 일본에서도 경기장에 걸개가 걸리는 등 ‘응원 물결’이 일어난 가운데 인천은 2019시즌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경남 FC와 비겨 10위를 확정하며 1부 잔류를 결정지었다.

인천의 잔류가 결정된 뒤 창원축구센터 관중석에는 ‘남은 약속 하나도 꼭 지켜줘’라는 현수막이 걸렸는데, 1부리그 생존 경쟁에 이어 병마와의 싸움도 이겨내고 돌아오겠다고 다짐한 유 감독에게 힘을 싣는 인천 팬들의 메시지였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의지력을 갖고 힘들더라도 잘 이겨내겠다”고 화답한 유 전 감독은 지난해 초 명예감독으로 물러나 마음으로 인천을 응원하며 치료에 전념했다.

이후에도 유 전 감독은 요코하마 마리노스의 경기장을 방문해 응원에 감사를 전하거나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이따금 모습을 드러냈고, 인천의 부진이 이어질 땐 ‘전격 복귀설’이 나올 정도로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은 듯했다.

올해 들어서도 상태가 악화했다는 보도에 반박을 내놓는 등 종종 근황을 전하곤 했으나 끝내 그는 마지막 하나의 약속은 지키지 못한 채 너무 일찍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