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인가, 정치적 계산인가…한인 사회는 침묵을 기억한다
지난 9월 4일 연방 이민당국이 조지아주 서배너 인근의 현대차-LG 합작 배터리 공장을 전격 단속하며 300여명의 한국인 노동자들을 체포한지 20일이 지났지만 지역 한인 사회는 여전히 충격과 분노에 빠져 있다.
적법 체류자까지 포함된 무차별적인 단속, 현장 근로자들의 인권 침해 논란, 지역 사회의 혼란. 무엇보다도 당시 상황을 지켜본 많은 한인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 것은 이 사건에 대해 조지아주 민주당 연방 상원의원인 존 오소프(Jon Ossoff)와 라파엘 워녹(Raphael Warnock)이 침묵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들은 23일 느닷없이 공동으로 작성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 중 사망한 2명의 이민자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책임을 묻는다는 내용이었다.
보도자료는 제목부터가 심각했다. “ICE 구금 중 사망 증가, 트럼프 행정부가 책임져야.”
물론 불법 구금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민자 생명 보호는 중요한 이슈다. 그러나 조지아주 내 한국 기업 공장이 표적이 된 사건에 대한 그들의 침묵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애초에 해당 배터리 공장은 오소프 의원 본인이 “자신의 가장 큰 경제적 성과”로 수차례 공공연히 강조해온 곳이다. 그런데 단속이 시작되자 오소프는 자취를 감췄고, 트럼프의 공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입을 닫았다. 워녹 의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떠한 해명도, 항의도, 보호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 와서 사망자 문제를 앞세워 “우리는 이민자의 권리를 걱정한다”는 메시지를 띄우는 모습은 그 진정성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정작 자신들의 지역구에서 벌어진 명백한 인권 침해 의혹에 대해서는 침묵했고, 더 나아가 한인 사회가 직접 영향을 받은 사안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언급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민주당 소속의 조지아주 연방 하원의원들만이 이에 항의하는 성명을 냈다.
이민자 문제는 민주당 정치인들이 현 행정부 탓으로 돌리기 쉬운 카드다. 보도자료는 트럼프 행정부를 수차례 거론하며 책임을 전가한다. 그러나 현재 조지아에서 발생한 ICE 단속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벌인 일이다. 또한 한국인 근로자들도 이민 구치소 수감 당시 부당한 처우와 위협을 받았다. 문제의 본질은 단속 그 자체가 아니라, 왜 한국인과 한국 기업들이 표적이 됐으며 지역 정치권은 아무런 보호도, 대응도 하지 않았는가에 있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 오소프와 워녹 모두 한인 사회의 높은 기대와 지지를 받아 연방 상원의원 자리에 올랐다.
특히 오소프는 한국계 유권자와의 소통을 강조하며,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미동맹 강화”를 수차례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막상 위기가 닥치자, 그는 기업과 노동자를 동시에 지켜야 할 자리에서 정치적 계산을 앞세웠다.
그런 그가 지금 와서 ICE 사망자를 염려하는 보도자료를 내며 “트럼프 탓”을 외치는 모습은, 유감스럽게도 침묵과 위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정치인의 전형적인 태도로 비칠 수밖에 없다.
오소프 의원이 기억되고 싶은 모습은 현대-LG 배터리 공장을 유치한 능력있는 정치인일 것이다. 하지만 한인 사회가 기억하는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한 순간, 바로 위기 속에서 누가 우리 곁에 있었는가이다. 단속의 충격 속에서 체포된 노동자 가족들의 고통 속에서, 한인 커뮤니티가 절박하게 정치적 보호를 기대했던 그 순간에 오소프와 워녹은 침묵했고 그 자리에 없었다.
이들에 대한 한인사회의 질문은 간단하다. “정말 이민자를 위하는 정치인인가? 아니면 자신에게 유리한 이슈에만 반응하는 정치꾼인가?”
선택적 분노는 정치인의 가장 나쁜 습관이다. 진정으로 이민자와 지역사회를 위한 정치인이라면 한인 커뮤니티 앞에 먼저 해명하고, 그 침묵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