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게임중독은 게임회사 공격해도 되나?

애틀랜타 총격사건, 경찰의 ‘의도적 프레임’에 왜곡 수사 우려

사회적 약자 및 소수 겨냥해 공격하는 ‘혐오범죄’ 본질 알아야

지난 16일 20대 백인 청년의 무자비한 총격으로 한인여성 4명을 포함한 6명의 아시아계 여성 등 총 8명이 희생됐다.

경비가 허술하고 여성들만 근무하는 아시아계 업소만을 계획적으로 노렸고, 그곳에서 일하는 아시안 여성들에게 집중적으로 총격을 가한 사건이어서 당연히 인종 혐오범죄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담당한 체로키카운티 경찰은 사건 다음날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해 열고 “용의자가 인종범죄가 아니라고 했다”면서 “인종범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황당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용의자에게 “이런 의도가 있었느냐”고 물은 뒤 “아니요”라고 답하면 그 말을 그대로 발표하는 수사기관이 세상 어느 곳에 있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변호사라면 자신의 의뢰인에게 “인종혐오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냐고 물으면 시인하라”고 조언할 리 없을 것이다.

경찰은 특히 “용의자가 성중독에 시달려서 이를 끊으려는 마음으로 관련 업소들을 찾아다니며 총격을 가했다”면서 “그는 지쳐있었고, 그에게는 나쁜 날(bad day)이었다”며 마치 용의자의 범행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충격을 줬다.

애틀랜타 교외에 위치한 체로키카운티는 인구의 80%가 백인이며 주택가격도 메트로 카운티에서 3번째로 비싼 지역이다. 이곳 백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날 브리핑을 맡았던 경찰 공보관의 태도에서 알 수 있듯 일부의 의식 속에는 “성중독을 유발한 아시아계에도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이 공보관은 지난해 ‘차이나 바이러스’를 조롱하는 티셔츠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자랑스럽게 올렸고 경찰 당국은 이러한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어제 브리핑이 문제가 된 뒤에야 해당 포스트를 삭제했다.

체로키카운티 경찰의 논리대로라면 게임중독에 걸린 백인이 ‘일진이 나쁜 날’ 게임을 만든 게임회사를 찾아가 총격을 가해 대량 살상을 하는 행위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번 사건의 피해업소가 대형 게임회사와 다른 점은 힘없는 아시안들이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뿐이다.

페이스북이 18일 그동안 소셜미디어에서 유포돼던 용의자의 ‘중국 혐오’ 포스트가 위조된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내세우며 “아시안 혐오 범죄의 증거가 사라졌다”고 ‘성중독’ 이론을 부각시키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펼친 증거 하나가 사라졌다고 해서 아시아계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이 없었다고 단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다. 이 젊은 용의자는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올겨 아시아계 여성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 어떤 것이었는지 밝혀내는 것은 수사당국의 몫이다.

이러한 수사가 이뤄지려면 주변 인물에 대한 포괄적인 조사와 소셜미디어 등 생각의 표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봐야 한다. 하지만 체로키카운티 경찰은 이러한 수사를 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인 스파에 대한 공격을 수사할 애틀랜타시 경찰과 바이든 대통령이 개입을 요청한 연방 수사국(FBI)의 역할에 기대를 걸어볼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를 위해 한인을 비롯한 아시아계 전체가 나서 철저한 수사와 재발방지를 요구해야 한다.

이상연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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